한 달도 더 된 것 같다. 내가 속한 모임을 마치고 앉은 술자리였다. 북한 핵문제가 안주로 올랐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설파했다. 오랫동안 정리된 생각인 듯 논리적이고 치밀했다.

요는 북한 김정은은 미치광이가 아니고, 핵에 대한 그들의 정책은 지극히 냉철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 핵문제를 키운 데에는 미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논리였다. 미국이 그들의 입맛에 따라 북한 핵문제를 가지고 놀다가 일을 이렇게까지 키웠다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이야 놔두고라도, 지구 전체를 파괴시키기에 충분할 만큼의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이 저네들은 되고 다른 나라의 핵개발은 안 된다는 ‘내로남불’식의 후안무치에 대해서야, 약간의 사리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제 삼을 일이기에, 나도 거기에는 불만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북한의 핵개발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과거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내다가 접은 것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어떤 반대의 성명을 내지 않은 이후부터다.  그것은 젊은 시절 외쳤던 ‘반전반핵 양키고홈’이 아직도 내게는 유효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을 어물쩍 눈 감고 넘어가는 것은, 비록 치기 어렸겠지만 내 나름으로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순수했을 그 때에 대한 배신이다.

이 말을 하는 내게 선배와 그리고 같이 자리하셨던 은사님께서 너무 순진하다며 웃었다. 미국이 자기들을 위협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있겠냐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그 말은 한 치의 틀림이 없는 천고의 진리에 가까우리라.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에 그렇게 당한다면, 그야말로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우를 범하는 바보 멍청이일 것이다.

북한은 그들이 처한 국제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쩌면 발악을 하는 것일 수도, 또 어쩌면 선배의 논리대로 정말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거쳐 지금과 같은 행보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생존을 위해선가? 내게는 북한 지배층 김씨 왕조의 생존을 위해 한반도를 볼모로 윽박지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금과옥조로 읊어대는 인민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수십만이 굶어죽던 중국이 오늘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인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인민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시급한 일인지를 두고 숱한 고민과 논쟁, 합의와 타협, 갈등과 숙청 의 과정이 있었다. 인민이 잘 살고 나라가 부강해지면 미국이 대수고 러시아, 중국, 일본이 대수겠는가? 쿠바가 그러고 있고, 미국과 전쟁을 한 베트남도 그렇게 하고 있다.

제 형제를 두들겨 패라고 온 세상에 대고 못난이 짓을 하던 데에서, 이제 다시 형제를 온전히 형제라 여기려는 분위기가 남쪽에 만들어졌다. 돈키호테처럼 미국을 향해 핵을 들고 돌진하여 한반도를 잿더미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 말고, 형제와 손을 잡고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망상일 뿐인가? 흑묘(黑猫)든 백묘(白猫)든 남북한이 아랫집 윗집으로 지지고 볶으며 오순도순 사는 꿈이 정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책상물림 얼뜨기의 잠꼬대에 불과한 것일까?

오늘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벌일 듯 위협하는 짓거리를 뉴스로 접하며, 날씨만큼 우중충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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