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어느덧 무더위가 가고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하루 일을 마칠 무렵 먼 하늘을 바라보면 짙고 싱그러운 푸름이 눈을 맑게 해 주지요. 가을이 되었으니 하늘이 무척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입추 지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군요.

가을은 또한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 했습니다. 천고마비天高馬肥, 너무도 많이 들어본 말이지요. 이는 중국의 북쪽 민족들이 추운 겨울에 쓸 식량과 물품들을 마련하기 위해, 한족을 공격하려고 봄과 여름 동안 말을 잘 먹인 다음 가을에 살찌게 하여 기동력을 높이고자 한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에 대비하여 지은 것이 여러 왕조를 거쳐 진시황 때 완성한 만리장성이고요. 그러니까 중국 왕조로서는 하늘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은 책을 읽는 여유를 갖기는커녕 근심과 걱정이 많은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천고마비라는 말의 탄생 배경을 살핀다면 책 읽기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글자의 뜻만을 새겨서 헤아린다면 무엇이든 하기 좋은 시기라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겠지요. 각별히 책 읽기와 연관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만든 것은 누군가의 기발한 표현 감각이 빚은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5년 국민 독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우리 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1권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통계 수치에 의한다면 어른 1인이 한 달에 0.76권의 책을 읽은 셈이지요. 이는 OECD국가 중 최하위이며 국제 연합 순위 166위에 해당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때 가장 우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어른들은 자녀들,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말합니다. 한 술 더해 감상문까지 쓰도록 요구하지요. 그리고는 무엇을 느꼈는지 얘기해 보라고 합니다. 정작 자신들은 ‘사업상 바쁘다, 모임 있다, 그거 아니라도 머리 복잡하다, 피곤해서 쉬어야 한다, 옛날에 많이 읽었다 등’ 여러 핑계를 대면서 책 읽기를 피합니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읽으라, 쓰라고 강요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책 읽기는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집안의 어른인 가장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이유가 따로 없습니다. 나의 변화가 가장 큰 첫걸음임을 깨닫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의도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런 모습을 가족이나 주위에 보여주는 행동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책 읽기를 생활 놀이의 하나로 인식하도록 분위기를 가꾸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번만이라도 식구끼리 특별한 시간을 가지려는 용기가 있어야겠지요. 모두 모여서 우선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 전화 따위 전자 매체를 물리쳐 봅니다. 그리고 그 날 일어났던 일, 감명 깊게 읽었거나 또는 관심 분야의 책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으면 가정의 새로운 문화가 싹을 틔울 겁니다. 함께 어울리는 싹, 서로 이해하며 즐거워하는 싹, 슬기롭고 소중히 여기는 싹, 감사하고 행복한 싹이 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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