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포스터.

국정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각에서는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었다. (역사교과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차별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사고의 힘을 기르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며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교과서가 학생들의 정서에 작용하는 힘은 사소하면서도 거대하니까 말이다.

예컨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특히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첫사랑의 원형은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단편소설 하나가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에 습자지에 물이 스며들 듯 새겨진 아련한 이미지,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의 추억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쏟아졌다가 지나가버린 소나기와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그만큼 대단한 작품이지만, 더불어 교과서의 역할을 단순화하기 어려운 이유다.

아무튼 감히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신성시되던 황순원의 소나기이기에 다른 저작물로 만들어내기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잘해야 본전, 못하면 민폐가 될 게 분명하므로. 그러던 차에 섬세하고 사려 깊은 작화로 유명한 안재훈 감독이 <소나기>를 만들어 냈으니, 반가운 마음과 기대를 무너뜨리면 어쩌나하는 걱정까지 양가감정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러닝타임 48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는 잊고 있던 옛 감정을 되살려냈다. 뙤약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얼굴의 시골 소년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뛰어놀던 그 시절 모습이 겹치고, 하얀 얼굴에 분홍 스웨터와 남색 스커트를 입은 서울에서 온 윤 초시 증손녀를 보면서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첫사랑의 모습을 기억하려 애썼다.

다만 이제는 너무나 나이가 들어버린 탓인지, 소년소녀의 애틋한 감정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과 주변사람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긴” 윤 초시네는 소낙비를 맞고 여러 날 앓아도 변변히 약도 못 써보고 증손녀를 보내야만 했으니 그 마음 오죽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망’스러운 소녀의 마음은 여전히 아릿하기만 하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천사다. 그러니 윤 초시네 증손녀는 더 예뻤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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