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우리 집 마당에는 작은 절구통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는 수련 가족이 살고 있는데 초여름이면 청초한 꽃을 피워 시선을 끕니다. 깔끔하고 단아한 꽃의 기품은 삶의 신선한 청량제 구실을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는 건 참새를 비롯한 여러 종의 새들입니다. 녀석들은 조잘거리며 무리 지어 혹은 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니다가 목이 마르면 절구 가에 내려앉아 머리를 조아리고는 물을 마십니다.

생존 문제인 새의 물 마시기를 보면서 삶의 효용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단 멈춤」의 의미를 짚어 보겠습니다.

새는 물 한 모금 마시고 주위를 휘 둘러보고 또 하늘도 한번 쳐다보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을 보노라면 뭔가에 쫓겨 바삐 뛰어야 하고, 패스트푸드를 한 손에 쥐고 먹으며 빨리빨리 길을 재촉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새가 가지는 잠깐의 여유는 많은 의미를 품습니다. 비단 물을 마셔 목을 축이려는 뜻만 있는 건 아니지요. 주변의 위해한 요소를 경계하고, 풍광을 살피며 지형지물을 숙지하고, 텃밭이나 담장 나무 등 현실을 구성하는 요소가 미래의 삶에 어떤 활용 가치가 있으며,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함이라고 여깁니다.

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앉아 얘기를 나누며 쉬다가 또 걸음을 옮기고 하는 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을 볼 수 있습니다. 몹시 바쁘거나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들에겐 노인들의 이러한 행위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흡 한번 고르는 일은, 지친 심신을 가다듬고 일상의 긴장감을 풀며 뭔가 놓친 일은 없는지 훑으면서 자신을 추스르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이러한 여유를 맛보지 못하는 삶은 진실로 안타깝고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더욱 기대하기 힘들고요.

도로 위로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량들이 전진을 위한 질주를 합니다. 무심코 달리는 길에는 어린이보호구역은 물론이고 횡단보도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하얀 정지선을 그어 놓았습니다. 일단 멈춰서 주변을 살피라는 개념이지요. 천천히,라고 써 놓은 것 역시 생명 존중 의식을 앞세워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고 믿음으로써 서로 보호하자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운전대를 잡으면 태도가 돌변합니다. 차를 타면 무서울 게 하나 없는 모양이지요. 정지선이고 신호등이고 중앙선이고 막무가내로 질서를 무시하고 파괴합니다. 오히려 차에 부딪치면 저만 손해지,라는 부정적이고 편협한 인식을 갖고 있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길을 건너는 사람들도 무단횡단을 거리낌 없이 하지요.

여유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누가 주니까 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일단 멈춤」과 천천히 가기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존중과 배려를 담은 건널목 정신입니다. 난폭 운전이 사라지고 내가 저지른 불법은 괜찮다는 비뚤어진 시민 의식이 바로 선다면 함께하는 평화로운 사회는 분명 오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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