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포스터.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화제의 중심에 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실화를 소재로 한 전쟁물을 들고 복귀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반응은 심상찮다. 106분의 러닝시간동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공포를 체험할 수도, 160분의 지루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심하게 호불호가 갈릴 영화이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틱한 재미와 전쟁 액션에 방점을 둔다면 거의 실망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전쟁이 소재인 영화는 클리셰라고 할 몇 가지 기본 설정이 있다. 치열한 전투장면, 전쟁이라는 상황이 빚어내는 비이성적인 참혹함,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 등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관객의 가슴에 남게 될 전쟁 영웅 등이다. 예컨대 걸작이라고 손꼽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전쟁의 명분과 가치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하면서도 영화적 클리셰를 모두 충족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덩케르크>는 기본 설정에서부터 어긋나 있다. 먼저 적군이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치열한 전쟁장면을 기대할 수가 없다. 비이성적인 참혹함은 있으나 보여주는 방식이 다르다. 굳이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로 특정 짓지 않고, 재난에 맞닥뜨린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라고 해도 무방하다. 또한 전쟁영웅은 없고 살아남은 자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허무함이 감돈다. 그것을 106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하에 마치 3부작처럼 구분해서 보여준다. 딱히 지목할 주인공 없고 영화적 재미가 결여된 다큐멘터리, <덩케르크>에 대한 불호의 시선은 그렇게 나온다.

이렇듯 관객이 마땅히 감정이입을 할 명료한 대상이 없다면 몰입감이 사라진다는 취약점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명 연출이 부각되었다.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았기에 모든 캐릭터가 빛났고, 사실적인 화면과 음악으로 끝없는 긴장감을 구축해 냈으니 말이다.(배트맨 3부작을 연상해보면 안다) 무엇보다 관객이 마치 그 시절 그 전쟁에 직접 뛰어든 것 같은, 아니 감독이 관객을 억지로 전쟁의 포화 속으로 우겨넣은 느낌마저 든다. 이런 사실적 체감이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이끌어 내지 않았을까.

한 줄 요약. 전쟁을 체험하게 만드는 기묘한 작품이나, 영화적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부족.
첨언. 다만 개인적으로 전쟁 속 생존의 처절함을 강조한 영화로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라인> 이상 가는 영화는 없었다. 주제는 차치하고서.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