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불법 비자금 형성 의심…하 사장 등 10여 명 출국금지
감사원 “수리온, 안전성 미흡”…방사청장 등 수사의뢰 발표
KAI 악재에 지역사회 들썩…“수사 부적절” 대 “적폐청산”

▲ 14일 KAI 본사 전경. 평온한 듯 보이지만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하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검찰이 방산비리 혐의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전격 압수수색 하는 등 수사에 들어가면서 KAI 직원들은 물론 사천 지역사회가 함께 들썩이고 있다.

검찰이 KAI 본사와 서울사무소, 산청 공장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은 지난 14일 아침이다. 수사관 100여 명이 동원될 만큼 대규모였다. 사천에 있는 KAI 본사에는 대형 버스 2대가 내려와 밤늦은 시간까지 수색을 이어갔다. 검찰은 이와 함께 하성용(66) 사장을 비롯한 KAI 임직원 10여 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검찰이 혐의를 가장 짙게 두는 것은 특정 외주업체에 비용을 부풀린 뒤 일감을 몰아주고 다시 비용 일부를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KAI 인사팀 간부 A씨는 자신의 친인척에게 연구·인력 용역업체인 B사를 세우게 하고 일감을 몰아줬다. 검찰은 지난해 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경남에 있는 B사 주소지에 수사관을 보냈으나 문을 닫은 페이퍼 컴퍼니로 드러나 허탕을 친 바 있다.

검찰은 A씨의 B사 일감 몰아주기가 개인 차원이기보다는 하성용 사장의 은밀한 지시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 과정에 조성된 수십억 원 규모의 비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집중해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주목하는 또 다른 혐의는 한국형기동헬기 수리온과 경공격기 FA50 등의 개발 원가를 부풀려 개발비를 편취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이미 2015년에 수리온 원가 조작 의혹을 포착하고 그해 10월에 검찰에 통보한 바 있다. 당시 감사원은 KAI가 수리온 원가를 부풀려 발주처인 방위사업청으로부터 547억 원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검찰은 내사 과정에 수리온뿐 아니라 FA50이나 T50 등에서도 비슷한 정황을 발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KAI본사 1층 로비에 전시된 수리온 헬기 모형.

검찰은 이밖에 군 장성에 대한 상품권 로비 의혹, 환차익 활용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관해서도 압수물 분석 뒤 규명한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 불법 조성된 비자금이 하성용 사장의 연임 로비 등에 쓰였는지 여부도 밝힐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으로 KAI의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 16일 감사원이 KAI와 관련한 또 다른 감사 결과를 발표해 더 눈길을 끈다.

감사원은 이날 지난해 3~5월, 10~12월 두 차례 실시한 수리온 헬기사업에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수리온은 결빙과 낙뢰 보호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비행안전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동체결합 불량 등으로 빗물이 스며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방위사업청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미국에서 수리온 헬기의 결빙성능 시험을 진행한 결과 101개 항목 중 29개 항목이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나오자 2016년 8월 수리온 2차 납품을 중단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 KAI의 “2018년 6월까지 결빙성능 보완” 약속에 납품 재개 결정을 내렸다.
감사원은 결빙성능 개선비용을 두고 국방부는 KAI가, KAI는 방사청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이 있었음에도 이를 매듭 짓지 않고 전력화 재개를 지시함으로써 비행안전성에 심각한 위협을 줬을 뿐 아니라 2018년 6월까지 체계결빙 규격의 적용이 미뤄져 해당 기간의 지체상환금 약 4571억 원을 부과할 수 없게 됐음도 지적했다.

이에 감사원은 장명진 방사청장 등 3명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고, 방사청에는 KAI에 손해배상 청구 방안을 마련토록 통보했다.

검찰의 압수수색과 감사원의 감사 발표가 잇따르면서 KAI 분위기는 침통 그 자체다. 경우에 따라 하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상당수가 사법처리 될 수 있는 데다 수리온 등 성능 개선이 정상적으로 이뤄질지, 또 성능 개선이 이뤄진다 해도 시장에서 신뢰를 계속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도 KAI 사태를 무겁게 지켜보고 있다. 일각에선 “T50 미국 수출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적절치 않은 수사”라며 KAI를 두둔하는 반면, “방산비리라는 적폐를 청산하는 일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비등하다.

이번 사안이 지역경제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항공산업 성장으로 활기를 띠고 있는 부동산업계는 “KAI발 대형 악재가 터졌다”며 한숨짓고 있다. 그러나 “썩은 살이 있다면 도려내고 치료해야 더 건강해진다”며 긍정적 전망을 내놓는 이도 있다.

한편, KAI는 수리온 개발 과정 등에 개발비를 편취했다는 감사원 지적 등을 전면 부인해 왔다. 또 비자금이 하 사장의 연임 로비 등에 쓰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혹 확산을 차단하는 분위기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