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포스터.

개인적으로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이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수십 번은 봤을 정도로. 이런 유니크함을 <하루>에서도 볼 수 있을까. 타임루프, 타임리프, 타임워프, 타임슬립…….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용어가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면 ‘시간’은 영화나 소설을 비롯한 장르물에서 매우 훌륭한 소재임은 분명하다. 수많은 대가들이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고 단언컨대 앞으로도 무수히 재생산 될 것이다.

하지만 낯익은 소재의 함정은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창조해야하는 노고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하루> 너무 많이 겹친다. 타임루프라는 소재도 그렇고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도 그렇고 심지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그렇다. 이쯤 되면 기시감 종합 선물 세트라 불러도 좋겠다. 이는 <하루>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소재와 주제의 영화가 반복 생산되는 까닭은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영화뿐 아니라 어떤 예술에서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기는 힘들다는 저간의 사정이 원인일 것이다. 더욱이 대중과 근접 소통해야 하는 영화의 경우 익숙한 소재가 안전한 포석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고 데뷔작으로 타임루프를 선택한 조선호 감독의 의중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빤한 소재로 빤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중은 익숙함이란 안전장치 속에서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여기에서 두드러져야 할 부분은 같은 재료를 가지고 색다르게 보여주는 법이다. 하지만 그 다름의 방식은 모두가 공감을 해야만 한다. 대중이 보기에는 이거나 저거나 별다를 것 없고 동의반복 같아 지루한데, 감독 혼자서만 이것은 달라요! 하고 우기면 조금 곤란하다.

반복되는 ‘하루’를 바꾸고자 목숨을 건 배우들의 열연이 그나마 빤한 영화의 지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딸을 살리기 한 김명민의 고군분투도 훌륭하고, 아내를 구하기 위한 변요한의 절절함은 배우로서의 그의 역량을 보여주는데 모자람이 없다. 다만 예측 가능한 결말을 비롯해 너무 안전한 노선을 따라가는 감독의 연출방식 또한 지루함을 더했다. 9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이 이렇게 느껴졌을 정도이니 말이다. 신인감독의 패기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코드 하나쯤은 있어야하지 않나하는 아쉬움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