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조성…사천 출신 국군 44분 잠든 곳
홀대 받은 그들, 왜 국가는 책임지지 않는가?
함께 소홀했던 사천시 “이제라도 대책 찾는다”
‘6월이 가기 전에 사천국군묘지로 발걸음을…’

▲ 사천읍 구암리에 있는 ‘사천국군묘지’에는 사천 출신 국군 44분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관리 부실이란 멍에가 늘 따라다닌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6월이다. 비슷한 일상을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들에게 5월이면 어떻고 7월이면 또 어떠랴. 그러나 누구나 내 맘 같지 않은 법. 저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기억도 다르지 않은가. 그래서 6월은, 누군가에겐 그저 반복되는 시간의 연장이지만, 어떤 이에겐 환희요 또 다른 이에겐 아픈 상처다. 6월이 아픈 사람들. 어쩌면 ‘호국보훈의 달’이란 꾸밈말조차 서러울 뿐이다.

마침 6월 6일은 제62회 현충일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는 날인만큼 이날에 즈음해 우리 지역 현충시설을 찾아 호국영령들 앞에 고개 숙일 일이다.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사천시 현충시설은 노룡동 사천호국공원을 비롯해 용현면(조명군총 옆) 6‧25전쟁 월남전쟁 참전 유공자 기념탑, 사천읍(수양공원 내) 3‧1의거 기적비, 곤명면 다솔사(만당 한용운 근거지), 곤양면(면사무소 앞) 의사 최원형 기적비, 공군제3훈련비행단 위령비, 용현면(선진리성 내) 공군 충령비, 용현면(통양리) 호국무공수훈자 전공비 등 모두 8개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천국군묘지는 빠져 있다. 엄연히 실존하면서도 없는 듯 취급 받는 존재. 현충일에 즈음해  잊혀서 더욱 서러운 사천국군묘지를 만나보자.

사천국군묘지는 사천읍 구암리 1661-28번지에 있다. 사천읍에서 국도3호선을 타고 진주방향으로 빠져나가다 보면 사천공항 입구 건너편으로 ‘사천국군묘지’란 표지판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 사천역과 기찻길을 가로지르면 목적지가 나온다.

사천시에 따르면, 사천국군묘지의 첫 조성 시기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10월 15일이다. 1957년에 군립묘지로 설치가 마무리됐는데, 당시 한국전쟁으로 숨진 33명의 국군이 잠들었다. 1976년엔 국군묘지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1982년에 35기, 1994년에 44기, 1996년에 45기로 묘가 점점 늘었다가 2016년에 1기가 다시 줄어 지금은 44기의 묘가 조성돼 있다.

사천국군묘지에 안치된 이들 가운데 극히 일부를 빼고는 모두 한국전쟁 당시 싸우다 숨진 군인이다. 이들 가운데 국가보훈처가 존재를 공식 확인한 이는 25명이고, 이 가운데 일부는 국가유공자에 들지 못했다. 나머지는 유족이 없거나 기록이 불명확한 탓에 등록되지 않았다. 국가유공자로 등록이 됐든 되지 않았든, 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 참배의 목적으로 사천국군묘지를 처음 찾는다면 ‘에게, 이게 다야?’ 하고 놀랄 수 있다. 200㎡(60평)쯤 되는 좁은 터에 촘촘히 들어선 44기의 비석만이 이곳이 어느 공동묘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게다가 일부 시멘트로 만들어진 비석은 오랜 세월에 삭아 내릴 정도. 빽빽이 둘러싼 수목들로 인해 묘지는 그늘지고 습하며, 그래서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여름철 풀이 우거진 모습이라도 마주친다면 ‘국군묘지가 이렇게 관리되고 있나’란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지도 모를 일이다.

▲ 사천국군묘지 입구. 사천공항 건너편 사천역 너머에 있다.

실제로 사천국군묘지를 다녀간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를 향해 항의하는 이도 많았고, 사천시에 관리를 촉구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천시의 즉흥적 임시조치만 있었을 뿐 아직까지 근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국립묘지를 제외한 지자체 단위 국군묘지의 관리 규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경남서부보훈지청 박영준 보훈과장은 “보훈처에서 직접 관리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건의를 여러 번 했지만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사천국군묘지 관리에 어려움을 표했다.

국가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니 그 업무를 사천시가 떠맡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천시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모양이다. 관련 기록이 잘 남아 있지도 않고, 시설 관리에 부족함도 있었다. 그래서 유족들이나 방문객들의 따가운 질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천국군묘지와 유사한 전국 40여 개의 지역 국군묘지가 다 사천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방향은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산청이나 이천, 영천, 임실 등에 있는 국립호국원으로 묘를 이장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한 이의 묘는 옮길 수 없으니 반쪽짜리 대책인 셈이다. 다음은 사천시 종합장사시설인 누리원으로 옮기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국군묘지에 있는 무연고의 묘를 무기한 받아줄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장사법 상 10년이 상한이라 이후엔 다시 어디론가 모셔야 할 형편이다.

마지막 방법은 일정한 예산을 들여 지금의 국군묘지를 개선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다는 게 사천시 설명이다. 묘지가 너무 좁은 탓에 인근 사유지를 사들여야 하고, 다른 도시마냥 성역화를 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

시 주민생활지원과 김성순 과장은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게 이 경우다. 묘지를 개선한다고 해도 상당한 예산이 들어 부담이고, 국가가 챙겨야 할 분들을 지자체가 무작정 맡는 것도 모양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민을 거듭한 사천시는 일단 유족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고 유족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부터 밟고 있다. 실무자인 김성훈 주무관은 “유족이 아예 없는 무연고자도 있고, 유족마저 세상을 떠나 소식이 끊긴 경우도 있어 최대한 찾고 있다. 이후에 국군묘지 관리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천국군묘지의 초라한 현실을 놓고 국가기관과 일선 지자체가 책임 떠넘기기 한다는 식의 비난을 쏟아내고 싶지는 않다. 사천과 같은 경우가 전국에 40곳이 넘는다니,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보훈처와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기대한다. 나아가 그날이 오기까지 사천시도 호국영령을 기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푸르른 6월. 사천국군묘지에도 푸름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 곳에, 60여 년 전 그 옛날 푸르렀을 젊은 청춘들이 잠들어 있다. 딱딱하고 위압적인 조형물이 아닌, 포근한 흙속에 뼈를 묻은 국군아저씨를 만나러, 6월이 가기 전에 사천국군묘지를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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