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사천시민의 날, ‘사천-진주 상생’을 바라보다

지난 5월 10일은 사천시민의 날이었다. 1995년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통합해 사천시로 새롭게 출범하던 날을 기리는 뜻이 담겼다. 통합 초기엔 다시 갈라서자는 분위기가 조성될 만큼 심한 후유증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통합 22주년을 넘기고 있는 지금은 철 지난 얘기일 뿐이다. 물리적, 화학적, 감정적 융합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시 갈라서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쯤은 누구나 느끼고 있을 테다. 통합에 있어 상당한 걸림돌인 선거, 그리고 정치인의 지역주의 선동만 잘 극복한다면, 사천시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공동체로서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그런데 걸림돌이랄까 방해꾼이랄까. 굳이 꼽는다면 진주시의 집적거림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내세웠던 사천-진주 행정통합 문제를 지금도 사사로이 꺼내거니와 이는 다시 ‘상생’이나 ‘동반성장’과 같은 미사여구를 써 가며 사천시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상생과 동반성장.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자세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통합이나 상생이란 말로 집적거리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마음가짐을 하고 있는 이는 드문 것 같다. 그래서 제22회 사천시민의 날에 즈음해 이 글을 싣는다. 이 글은 지난해 9월 27일 사천‧진주상공회의소가 공동 주최한 ‘경남서부권 발전방안 심포지엄’에서 필자가 토론자로 참석해 했던 말을 다듬은 것이다. 주로 진주시민들을 향해 한 말이지만 사천시민들과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 각산에서 바라본 사천만 일대.

상대 배려해야 진정한 상생

오늘 토론의 주제가 ‘경남 서부권 발전 방향과 과제’입니다만 제가 보기엔 ‘사천과 진주, 진주와 사천이 어찌 상생 발전할 것인가’ 이 주제가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발제자이신 문태헌 교수님의 주제발표문에도 경남 서부권 발전 과제로 정부 규제프리존 활용, 사천-진주 광역도시계획 수립, 사천-진주 신산업지대 조성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사천과 진주, 진주와 사천 두 지역의 인식차 극복이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굳이 사천과 진주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국가도 상생해야 하고, 영호남도 화합하고 상생해야 합니다. 또 경남 서부권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마당에 남해와 하동, 산청과 함양 등과도 사천-진주는 서로 협력하며 상생을 꾀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시죠. ‘너 죽고 나 죽자’도 아니고 ‘너 죽고 나 살자’도 아닌, ‘너도 살고 나도 살자’가 상생입니다. 듣기에 아주 바람직하고 이상적이죠. 하지만 현실을 보면 ‘너 죽고 나 살자’ 식이 대부분 아닙니까? 지자체마다 10년 뒤 20년 뒤 인구 얼마 늘리고, 지역총생산 얼마 목표 달성하고. 이런 식으로 거의 실현 불가능한 도시발전계획을 세우고 지역민들을 각종 정치적 미사여구로 현혹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 과정에 지자체 사이에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때론 경쟁도 하고 시기 질투도 하면서 민감하고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돈 되는 사업은 끌어오고 싶고, 돈이 안 되거나 혐오스런 시설은 거부하고 싶고, 지자체마다 비슷한 처집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인구 노령화를 넘어 인구 절벽의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심지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군 단위 자그마한 지자체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연구보고도 나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위기의 순간에 시군 지자체들은 더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상생을 논해야 하겠죠. 너도 살고 나도 살려면 받는 게 있는 만큼 주는 게 있어야 합니다. 바꿔 말해 뭔가 얻기 위해선 상대에게 줄 것부터 챙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어땠나요? 내가 가진 좋은 것은 원래부터 내 것이었고, 네가 가진 것은 좀 나누자. 이런 식 아니었습니까? 이 문제는 단지 사천과 진주, 진주와 사천에 적용되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경남서부권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만큼 경남서부권 지자체들의 상생에 있어서도 유념해야 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골 깊은 사천-진주 인식 차

이제 범위를 사천과 진주로 좁혀 보겠습니다.

발제자께서는 진주 쪽에선 “진주가 크니까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하고, 사천 쪽에선 “공장은 우리 쪽에 있는데 주거나 쇼핑은 진주에서 하니 우리 지역은 손해만 본다. 가급적 멀리하자.” 이런 인식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진주 쪽 입장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천 쪽 입장이나 분위기에 대해선 좀 덧붙이고 싶습니다.

사천의 분명한 고민은, 사천의 산업성장이 도시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 데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바로 인근에 진주라는 더 큰 도시가 교육과 주거, 소비환경을 앞세우고 버티고 있고, 지금도 혁신도시를 발판으로 성장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사천시가 미리 준비하지 못한 탓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지금이라도 ‘항공산업의 성장을 사천의 도시성장으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이것이 사천시와 사천지역사회의 고민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이 고민을 바탕으로 산업단지 위치를 정하고 아파트 공급계획을 세우고 하는 것이죠. 이를 두고 ‘이기적이다’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상생이란 가치의 가장 밑바탕에 있어야 할 게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호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뢰와 존중 없이 상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거나 생각 없이 그냥 떠드는 것에 불과한 것이죠.

▲ 하동 금오산에서 바라본 사천만과 삼천포.

허심탄회 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난 시간을 잠시 돌아보겠습니다. 사천지역민들 입장에선 아프고 분하고 억울한 이야깁니다.

20여 년 전 진주와 사천이 함께 쓰기로 하고 나동광역쓰레기매립장을 만들었습니다. 땅을 두 지자체가 반반씩 댔습니다. 그런데 매립장이 완성되자 진주시의회와 지역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천 쓰레기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출입구가 진주 쪽에 있었기에 사천시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사천 땅이 진주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음에도 사천 쓰레기는 티끌 하나 들어가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남강댐은 어떻습니까. 홍수기에 남강으로 흘려보내야 할 엄청난 물을 인공방류구를 통해 사천만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어민들이 소멸보상을 받았다지만 그 옛날 군사정부시절 보상이 제대로 됐을 리 없습니다. 지금도 침수피해와 어업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천시 도시계획에 있어서도 큰 장애가 됩니다.

반면 남강댐 아래 있는 진주시는 어떻습니까? 홍수 걱정을 덜었습니다. 남강으로 흘러가야 할 홍수물 대부분이 사천만으로 빠지기 때문이죠. 그 덕에 평거지구, 신안지구, 상평지구, 초장지구 등 상습 침수지역은 신시가지로 거듭났고, 쾌적한 도시환경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혁신도시 역시 남강물이 흘러넘치던 범람원이나 유수지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모든 진주시민은 댐이 소재한다는 이유로 낙동강 물이용부담금을 전면 면제 받고 있지만 사천시민은 댐을 끼고 있는 극히 일부만 면제 받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혁신도시 얘기가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경남의 혁신도시로 진주시가 결정됐을 때, 사천시는 두 지자체의 미래 상호 발전과 협력을 위해 정촌지구에 혁신도시를 조성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하고 말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과거 이런 일들은 사천시와 지역민들에게 큰 상처가 되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잊을만하면 행정통합 하자고 진주 쪽에서 일방적으로 얘길 던졌죠. 사실상 흡수통합 하겠다는 발상으로, 이런 것들이 상처를 더 키웠습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상생하자’ 이런 말이 제대로 들리겠습니까? 마치 손은 내미는데 고개는 돌리고 있는 격입니다.

지금까지 사천 입장에서 말씀드렸지만, 반대로 진주 입장에서 사천시와 사천지역민들에게 섭섭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지자체가 상생 협력 그리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난 일들에 대한 허심탄회 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나친 정치적 접근이 상생 걸림돌

사천과 진주 두 지자체의 상생에 있어 항공우주산업을 빼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진주 쪽에선 항공우주산업의 파이를 나눠 먹자고 공격하는 입장이었고, 사천 쪽에선 아직 나눌 만큼 파이가 크지 않다며 방어하는 입장이었죠. 그러나 두 지자체가 항공국가산단을 동시에 조성하고 있는 지금, 항공우주산업이란 파이는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천이 생산설비가 강하다면 진주는 연구 인프라가 뛰어난 만큼 앞으로도 이런 방향에서 나아간다면 상생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2015년 말 우주개발사업을 둘러싸고 대립 갈등했던 일을 돌이켜 보면, 이것 역시 상호 신뢰와 존중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진주시가 미리 ‘우리가 이런 사업을 기획했고, 사천시와는 이런 점에서 이익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협조해 다오.’ 했어야 할 일인데, 그런 사전 논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진주 쪽은 연구개발을 맡고, 생산은 사천 쪽이 맡는 그런 모양새로 정리가 됐는데, 쓸데없이 얼굴만 붉힌 꼴입니다.

우주산업이 연구개발, 제조생산, 시험인증 분야를 다 포함해 일컫는 것이고 보면, 당시 진주시가 사천시와 함께 우주산업 관련 기업‧기관들과 MOU를 추진했다면 갈등 없이 해결될 수도 있었을 일입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끌고 갔죠. 앞서 말한 상호 신뢰와 존중이 깔려 있었다면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는 어쩌면 지나치게 지역구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 탓입니다. 그들의 반성과 분발을 촉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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