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무기력하게 살던 보험회사 직원 강수(김남길)의 앞에 미소(천우희)라는 여자가 나타났다.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잠들어 있는 여자, 몸은 잠들어 있고 대신 영혼이 외부를 누빈다. 그저 보험회사 직원일 뿐인 남자는 왜 이 여자를 볼 수 있는 것일까.

호황에 슬픈 멜로가 흥행을 하고 불황에 코미디가 뜬다고 하는데, 비슷한 의미로 엮어보자면 세상살이가 무료할 때 다이내믹한 SF가 뜨고 뭔가 어수선하면 단정한 영화가 뜨지 않을까. 요즘같이 어수선한 시국에선 뭔가 위안과 위로가 필요한 느낌이 드는데, <어느날>은 얼핏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처럼 적당히 판타지 요소가 섞여있는 달달한 로맨스의 외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로 상영관을 찾았다면 무척이나 실망했을 것 같다. <어느날>은 차라리 가을이라면 몰라도,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벚꽃 잎이 흩날리는 봄날에 어울릴 법한 감성 충만한 영화는 아니다. 이윤기 감독의 스타일이 그렇다.

슬픔은 슬픔 그대로 보는 것이 가장 슬프다. 일상 속 한 부분인 듯 그저 흘러가는 것. 그 과정에서 빛바랠 것은 바래고 체로 곱게 친 가루처럼 바람에 날아갈 것은 날아가는 것, 이윤기 감독의 장기 중 하나는 일상을 채우고 있는 사소한 감정들의 결을 섬세하게 구조화 하는 능력에 있다. <여자, 정혜>에서 발화된 마치 현미경으로 미세한 시간과 공간을 들여다보는 이윤기식 감성 연출은, 그래서 호불호가 갈린다. 섬세하거나 지루하거나. 살랑거리는 미풍도 태풍처럼 받아들이는 사람과 북풍한설이 시원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어찌 같을까.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펼쳐놓은 잔잔함에 감정을 터뜨리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야만 하는 게 불편하다. 마치 어느 봄날에 내린 비에 옷이 젖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사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게 싫고 차라리 한여름 소나기처럼 굵은 장대비를 선호하는, 감정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어느 날>의 전개방식이 싫을 수밖에 없겠다.

또 한 가지 불편한 것은 식상한 사연들이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닥 공감이 되진 않을 빤한 이야기들이니. 그리고 마지막 엔딩장면은 논란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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