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콩:스컬 아일랜드>

▲ 영화 포스터.

폭풍과 짙은 안개로 뒤덮여 인공위성으로도 관측되지 않는 미지의 섬 스컬 아일랜드, 지질탐사와 생태계 연구에 나선 사람들이 만난 것은 믿을 수 없는 신비였다. 그리고 그 섬의 주인인 ‘콩’과 거대 괴수들이다……라고 이 정도로만 줄거리를 정리하면 피터 잭슨 감독의 명작 <킹콩>의 도입부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지향점이 다르다는 건 조금만 지켜보고 있으면 바로 표시가 난다. 피터 잭슨의 <킹콩>은 사랑에 관한 영화이고 <콩: 스컬 아일랜드>는 <고질라>류의 블록버스터 괴수판타지이므로.

셰익스피어가 그랬다. ‘참된 사랑의 힘은 태산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그 힘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황금일지라도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누구나 그렇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며 사랑의 불멸성을 비웃고 통속성에 지쳐가면서도, 막연하게 상상하던 그 사랑의 증표를 만나게 되면 어떤 사심도 없이 박수를 친다. 그래서 <킹콩>의 처연한 눈빛에 박수를 보냈고 이루지 못할 사랑을 지켜보며 가슴아파했으며, 지금도 로맨스 영화 순위표에 들고도 남을 정도의 영원한 멜로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콩: 스컬 아일랜드>는 <킹콩>에서 핵심주제인 사랑을 빼고 괴수만 남겼다. 그들의 덩치는 더욱 커졌고 힘도 더 강해졌으며, 조금 더 많이 화끈하게 싸운다. 엄청난 스케일 덕분에 눈요기 하나는 확실히 제대로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인간은 여전히 오만불손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미국식 영웅주의 또한 죽지 않는 좀비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버틴다. 사실 피터 잭슨의 <킹콩>만 아니었다면 딱히 욕먹을 이유는 없지만, 어쩌랴. 비교하기 좋을 명작이 버티고 있는 것을. <콩: 스컬 아일랜드>가 아니라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을 더 많이 언급하게 되는 것은 정말정말정말 어쩔 수 없다. 볼거리에 치중하느라 빈약해진 이야기에 한숨만 늘어나니까.

다만 상업적 측면에서 <콩: 스컬 아일랜드>에 대한 기대는 크다. ‘마블 유니버스’처럼 ‘몬스터 유니버스’를 꾸리기 위해 <킹콩 시리즈>의 리부트 성격으로 제작했으며, 영화 말미에 달린 쿠키 영상에 슬며시 예고를 남겼다. 즉, 앞으로 거대한 괴수들의 향연을 기대해도 된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치고 박고 싸우면서 우지끈 때려 부수는 걸 지켜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제격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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