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싱글라이더 영화 포스터.

이름만으로 브랜드가 된 배우는 많은 듯 많지 않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배우가 공인역할을 하고, 연기력과는 별도로 배우 개인의 사생활이 티켓 구매력에도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는 브랜드파워를 갖기 위해 넘어야할 벽이 너무 높다. 그래서 이병헌은 한국배우치곤 조금은 독특한 지점에 있다. 비난받을 소지가 많은 사생활 덕에 안티도 많지만, ‘연기로는 깔 데가 없다’라는 말도 그에 대한 평가 중에 하나다.

아무튼 이병헌은 어느 새 브랜드파워를 가진 배우가 됐으며, 그 바탕에는 그 만이 가진 감수성이 놓여 있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수현이 보여준 맑디맑은 소년의 얼굴, <놈놈놈>의 창이가 드러내는 핏기어린 광기, <달콤한 인생>의 선우는 심장이 얼얼할 정도의 파괴적 피폐함으로 많은 영화애호가들의 인생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삶의 끝에선 캐릭터로 돌아왔다. <싱글라이더>의 강재훈은 잘나가던 증권회사의 지점장에서 ‘부실채권’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가족이 있는 호주로 떠났다.

영화는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그의 행로를 따라간다. 영화 줄거리에 복선이 깔려있고,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반전이 이어지기에 섣불리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도입부에서 사용된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은 이 영화의 소재이자 주제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병헌이 그려내는 한 인간의 슬픔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는 끝이 난다. 하나, 끝나지 않은 그 길을 계속 따라 걷는 기분이랄까, 영화 혹은 캐릭터가 남긴 여운은 깊고 또 슬프다.

개인의 삶이 가진 여러 얼굴은 결국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많은 관계들 속에서도 인간은 외딴섬처럼 혼자다. 그렇게 인생은 행복하고 또 불행하게 흘러간다. 왜 인간은 외로움의 끝에서야 인생을 돌아보는지 행복의 정점에서는 왜 그 순간의 소중함을 흘러가게 내버려두는지 이병헌의 얼굴은 삶의 그 순간들을 고요해서 처절하게 보여준다.

이런 영화일수록 배우의 캐릭터 해석력은 관객의 몰입도를 견인하는 큰 요소인데 역시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병헌은 본능적으로 캐릭터와 교감하는 감성적 영리함을 가진 드문 배우다. 영화가 보여주는 서사는 쓰고 씁쓸하나 영화적 경험은 달콤하다. 그의 전작처럼 인생은 달콤하나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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