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재심> 포스터. ⓒ 오퍼스픽쳐스

불합리와 몰상식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외면하게 되는 법이다. 실제로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상처받기 싫어서 세상일에 관심을 껐다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다. 그래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사건’처럼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거나 기능하지 못한 공권력 또는 공적 시스템의 문제로 개인이 피해를 보는 사례에 대해 남들과 마찬가지로 외면하고 있었다. 물론 핑계라는 것도 안다. 그러던 중 뜻밖에도 예능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의 개요를 접했으니, 재심을 담당한 국선변호사가 출연해서 어떠한 일이 있었고 어떤 문제가 벌어졌던 건지를 알려준 것이었다. 증강현실, 가상현실이 구현된다는 21세기에 이런 기막힌 백태가 벌어졌다니.

<재심>은 그 중에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몇몇 캐릭터에 영화적 허구가 가미됐을 뿐, 공권력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기, 불법 체포와 감금을 기본으로 구타와 협박으로 강제 진술서 작성하기, 진범이 등장해도 공권력이 잘못된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진범 외면하기 등 이게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다. (아, 요즘은 어이없는 뉴스가 자주 나와서 그런지 그 대한민국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재심>의 역할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과거 사건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플러스 점수를 받을지언정, 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도저히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기 힘들다. 출연진들의 연기는 나름 훌륭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던 옛말이 금과옥조의 진리로 다가올 뿐이다. 영화보다도 더욱 영화 같은 현실에 기대기만 했지,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 저 영화에서 보던 전형적이고도 진부한 캐릭터가 등장해서 예상 그대로의 상황을 열심히 보여준다. 속칭 ‘감성팔이’만 하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울 뿐이다. 완성도 높은 수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면 소재가 아깝지.

여하튼 공적 시스템이 무너지면 개인이 어떤 피해를 입게 되는지를 강하늘이라는 젊은 배우가 정말 멋지게 연기해낸다.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에서 변호사로 둔갑한 정우도 반갑다. 그리고 대배우라 불려도 마땅한 김해숙의 연기는 가히 지존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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