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 ④ 메가박스 사천점 이평수 대표

제주 리조트 개발에서 사천 영화관 건립까지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며 치열하게 달려온 삶
“어떤 사람?” 쏟아지는 관심에 “그냥 사업가”


 

▲ 실안 호텔 건설 현장을 둘러보는 사천메가박스 이평수 대표. 그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길보다는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영화관도 하나 없는 동네, 뭐가 좋아요?”

언젠가 사천의 인구문제를 주제로 취재하던 중 아기를 안은 젊은 여성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당시 그 여성은 남편을 따라 사천에 살고는 있지만 주거환경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 ‘아, 교육문제나 일자리 못지않게 영화관의 유무도 누군가에겐 꽤 중요하구나’ 새삼 깨달았던 순간이다.

그리고 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사천에도 영화관이 들어섰다. 평소 영화 관람을 즐기는 사람들로선 크게 반길 일이었다. 반면 일각에선 ‘인구 12만의 사천시에 영화관 운영이 가능할까’라는 주제 넘는(?) 걱정도 나왔다. 이 걱정은 ‘도대체 사장이 누구지?’ 이런 궁금증으로도 이어졌다. 이 영화관이 문을 연지 1년여가 지났고 그 문은 아직 열려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묵은 궁금증을 풀어 볼까나?

“그냥 돈 벌러 왔지요. ‘인구 12만이면 사업성 충분한데, 왜 영화관이 없지?’ 이런 생각이었다고 할까. 그런데도 어떤 분은 좋게 해석해주시기도 하는데, 아니에요!”

▲ 2015년 문을 연 메가박스 사천점.

알 듯 모를 듯 연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하는 메가박스 사천점 대표 이평수 씨. 그는 1970년 사천읍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뒤 부모님을 따라 경기도 김포로 이사. 20대 초중반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업에 도전해 쏠쏠한 재미를 맛보다 1995년, 삶의 무대를 제주도로 옮겼다.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한 여행이 계기였으나 이는 곧 그의 인생에 중요 변곡점이었다.

“여행 차 들어갔는데 그냥 나오기가 싫었어요. 돈도 한 푼 없었는데, 허드렛일 하며 시간을 보냈죠. 몇 년을 그렇게.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저를 더 단단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남들에겐 사업구상의 시간이었다고 말하지만…(웃음)”

그의 사업구상(?)은 2000년대 접어들며 실행에 들어갔다. 당시 제주는 관광의 도시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호텔이나 콘도미니엄 모텔 민박 등 숙박시설이 꽤 많았다. 그럼에도 이 씨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농촌 민박집에 작은 수영장을 넣는 등 업그레이드 시켜 대량화 하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닿은 그는 IMF로 공사가 중단된 건물을 인수해 새로운 개념의 숙박시설을 선보였다.

“요즘이야 펜션이 흔하고 널리 알려진 개념이지만 그땐 그런 단어조차 잘 몰랐죠. 소규모 리조트를 오늘날 펜션처럼 만들어 공급했더니 인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몇 개를 잇달아 하며 재미를 좀 본 거죠.”

그러나 관광 붐을 타고 숙박시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모습에 이 대표는 다른 분야로 곧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영화관이었다. 당시 영화 관람을 즐겼던 그는 제주에 있는 많지도 않은 영화관이 하나 같이 1~2개관 규모의 소형이라는 점에 주목해 제주 내 최초의 대형 복합상영관을 지어 공급한다. 지금의 메카플러스와 제주CGV이다.

“CGV 전까지 제주에 2개 영화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상영관이 적다 보니 새 영화는 쏟아지는데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없어 답답했죠. 영화 한 편 보러 비행기 타고 육지로 나갈 수도 없고. ‘내가 그럼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5개 상영관을 갖춘 메카플러스를 만들었던 겁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제주 내 전체 영화관람 인원이 크게 늘었고 사업성도 확인됐다. 그는 곧 2탄을 준비했다. 롯데시네마 제주점을 갖춘 노형타워 건설. 그러나 2008년 터진 미국 발 금융 쓰나미 ‘리먼 사태’를 맞으며 자금난을 겪게 되고, 가까스로 준공은 했으나 제주CGV까지 함께 매각하는 시련을 맛봤다. 2009년의 일이다.

“그땐 정말 충격이 컸습니다. 아무 것도 없을 땐 몰랐는데, 가졌던 것을 모두 잃으니 상실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한동안 유언장을 품고 살았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지인이 도움을 줬어요. 저는 그 고마움에 최소한이라도 보답코자 거액의 생명보험에 들었습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겨도 빚을 지고 갈 순 없다고 생각했죠.”

지인의 도움으로 새롭게 시작한 건 캐릭월드 전시관을 짓는 일이었다. 이와 연계한 펀테마파크도 예전부터 구상했던 사업이다. 제주가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지라는 사실에 충실한 사업 아이템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두 전시관은 지금도 관광객이 꾸준히 찾는다고 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의 전공분야라 할 리조트 건설과 영화관 건립도 이어나갔다. 특히 2013년에 개관한 메가타워와 메가박스 제주점은 2015년 9월 메가시티와 메가박스 사천점을 낳는 원동력이었다.

이쯤에서 정말 궁금한 것 한 가지. 12만 도시 규모에서 영화관 운영이 정말 괜찮은가 하는 궁금증.

“지난해 관객요? 통계 다 잡히니까 비밀도 아니죠. 유료 32만 명에 소외계층 등 무료 관객 3만 명. 이 정도면 나쁘지 않고 잘못한 투자도 아니니까 제발 걱정들 마시라고 해주세요!(웃음)”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걱정 어린 질문을 자주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예 사업계획을 더 키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금의 4개관에 이어 260석 규모의 대형 상영관 1개관을 올해 중 신설한단다.

사실 그에겐 이것 말고도 사천에서의 현재진행형 신설사업이 또 하나 있다. 삼천포 실안관광지에 건설 중인 풀빌라 형태의 호텔이 그것이다. 이 사업은 ㈜신화랜드(대표 이평수) 이름으로 진행하는 것인데, 제주의 여러 사업체 또한 같은 법인 소유다.

“오랜만에 사천에 와서 보니까 실안이 정말 좋더라고요. 마도와 저도 등 올망졸망 섬들이 눈앞에 모여 있고, 죽방렴이란 특유의 볼거리, 여기에 멋진 저녁노을까지. 그런데도 관광객들이 사천에 머물지 않고 남해로 빠져나간다는 볼멘소리가 있다기에 이상하게 생각했죠. 저는 분명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 사천 실안에 들어설 프사이호텔 조감도

이 대표는 제주에서 여러 번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단독형 풀빌라 호텔을 건립하고 있다. 인근 지역의 다른 숙박시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영화관을 결합시키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계속해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호텔 주변이 어촌마을이고 여러 섬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수상택시 개념을 도입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죠.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형식으로 지역민들이 직접 참여해 10~20분 간격으로 도항선을 운행하면 관광객들에겐 케이블카와 함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그 여파로 관광객이 붐비면 고향을 떠났던 출향인들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 사천읍 수석리 소재 메가박스 영화관 이평수 대표가 꾸준한 기부활동을 펼쳐 눈길을 끈다. 이 대표는 영화관내 백미 릴레이 운동 및 성금 모금함 비치 등 시민들의 나눔 동참을 유도하는 등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사천아카데미와 각종 사천시 행사에 영화 초대권을 기부하고 있다.

제주 우도의 사례를 사천에 접목해보고 싶다는 뜻이다. 2009년 ‘리먼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뒤로 이 대표의 삶은 더욱 치열해졌다. 반면, 세상을 향한 감사의 마음도 커졌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과 행동에는 타인을 향한 배려가 묻어났다. 그가 영화관 한쪽에 ‘사랑의 쌀 나누기’ 코너를 마련한 것이나 건설 중인 실안 호텔에 식당을 최소화 해 지역 상인들과 상생하겠다고 마음먹는 일 등이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의 꿈도 이와 무관치 않다.

“쌀 기부 참여가 생각보다 저조해요. 그래도 약속한 게 있어 영화관에서 부담하고 있지요. 일이 뜻대로 진행되면 머잖은 시기에 공익재단 같은 걸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나이로 마흔여덟의 이평수 대표. 그는 아직 미혼이다.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해야죠!”

당연하게 들려야 할 이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이유가 뭘까. 그가 일에 빠져 사는 듯한 인상이 그만큼 강했던 모양이다. 그는 오늘도 사천과 제주를 오가는 비행기에서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길과 아무나 갈 수 없는 길, 선택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좌우명을 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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