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이 고려왕실의 초석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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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이 고려왕실의 초석 되다
  • 이은식 문학박사(경남문화재 전문위원)
  • 승인 2017.02.13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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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사천을 빛낸 인물] 고려 현종 ①

고려와 신라의 혈통 잇는 왕욱과 왕순 사천에 오다
왕이 날 자리…왕욱 “내가 죽으면 엎드리게 묻어라”
천 년 간 이어지는 제향,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 지난해 11월 26일 정동면 대산마을에서 고려 현종의 넋을 기리는 제례봉행 행사 모습.(사진=뉴스사천 DB)

현종의 이름은 왕순으로 고려 8대왕이다. 할아버지는 태조 왕건, 아버지는 태조의 여덟 번째 아들 왕욱이다. 우리나라 역대 왕들 중에서 현종만큼 눈물겹고 드라마 같은 삶이 있을까?

어머니 효숙왕태후 황보 씨는 왕순을 낳고는 죽었다. 성종 11년, 992년 7월 1일의 일이었다. 그 달에 아버지 왕욱은 사천으로 귀양을 왔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족내혼 즉 집안끼리 결혼하는 풍습이 있었다. 고려왕실의 최초 족내혼은 2대왕 혜종이 자신의 딸을 이복동생 왕소에게 시집을 보낸 것으로 시작된다. 족내혼은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행하여지던 풍습이었다.

그래도 왕욱과 경종의 왕비였던 황보 씨는 도를 넘었다. 불륜을 저지른 죄로 개성에서 사천으로 귀양 와서 와룡산 기슭에서 살았다. 오늘날 와룡산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와룡산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왕욱이 거처했던 곳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유모의 손에서 자란 왕순을 2살 때, 당시 왕이었던 성종이 사천에 있는 아버지 곁으로 보냈다. 그러나 사천에는 같이 있어도 부자간 같이 살지는 못하고, 왕순은 오늘날 정동 대산마을에 있는 배방사에서 살았으나, 왕욱이 사천의 어디에서 살았는지 그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왕욱이 언제 태어났는지 기록이 없다. 그러나 왕욱의 어머니 신성왕후가 결혼할 때가 936년이었으니, 왕욱은 937년이나 938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신성왕후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사촌동생이었다. 신라와 고려의 동맹을 위해 정략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의 귀족 등은 왕욱에 대한 관심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신라의 핏줄이 고려의 왕실에서 다시 맥박 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왕순은 왕건의 유일한 혈통으로 마지막으로 남아 있게 되니, 사천은 신라의 귀족과 고려왕실의 입장에서 초미의 관심지역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천에서 귀양살이 하던 왕욱은 아들과 자주 만났다. 이들이 만나고 헤어지던 곳을 고자실(=돌아서며 자식을 돌아보는 골짜기)이라 부르며 지금도 전하고 있다. 왕욱은 학문과 풍수에 매우 능통하였다. 그는 사천에 왕이 날 수 있는 길지가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몰래 아들 순에게 금 한 주먹을 주면서, “내가 죽으면 귀룡동에 시신을 엎어서 묻어라”고 지시하였다.

성종 15년, 996년 7월, 사천에 귀양 온 왕욱은 만 4년 만에 사천에서 죽었다. 그의 유언대로 그는 귀룡동의 산에 묻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능화봉이라 소개하고 있다.

▲ 사남면 능화봉 왕욱의 묘터.

왕순이 현종으로 등극한 후 아버지 왕욱을 개성으로 모셨다. 1017년 4월이었다. 2017년 올해로 꼭 천 년 전의 일이다. 사천을 왕이 태어날 수 있는 곳으로 알았던 왕욱은 현종 즉위 후 편안히 고향 개성으로 돌아갔다. 지금 그 자리는 주인이 없는 무덤 터만 남아서 역사를 말하고 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사남면 능화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후일 안종으로 높여진 왕욱의 묘에 천 년이 지나도록 오늘날 제향을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세계 어느 역사에 왕조가 두 번이나 바뀌고, 민주주의가 들어서고 그러면서 천 년이 지나도록 추모의 제향을 지내는 마을이 있겠는가!

올해 제향은 천 년을 기념하는 제향이라 하니 사천 사람이 자긍심으로 참여하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방명록에 이름 석 자라도 남겨서 다시 천 년을 기다려 봄직 하지 않을까?
신라가 멸망한 지 천 년, 그 핏줄을 고려로 이어가려고 한 지 오늘로 다시 천 년. 천 년이 어제같이 애틋하다.


봉황대에 봉황이 노니더니(鳳凰臺上鳳凰遊)

봉황이 떠나니 봉황대는 비고 강물만 흐르네 (鳳去臺空江自流)

옛 시인(=이백)의 글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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