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포스터.

<라라랜드>와 더불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컨택트>는 시간과 언어에 관한 SF영화다. 알려져도 무방한 수준까지 내용을 밝히면, 어느 날 갑자기 12개의 미확인 외계물체가 지구 곳곳에 출현하자 세계는 그들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던 중 언어학자를 통해 그들이 전하는 말을 해석해보니 ‘무기를 준다’는 말이었고, 이에 화들짝 놀란 세계는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 그런데 무엇이 이 영화를 놀랍고도 경탄하게 만들까.

<컨택트>가 보여주는 것은 언어와 시간의 절묘한 연계다.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기’가 아니라 ‘언어’였으나, 그들의 말과 지구인의 말이 달라 각자의 언어가 가진 사고체계의 한계에 의해 오역을 낳는다. 이 언어가 시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나면 금세 놀라움으로 바뀌고 만다. 그러니까 <컨택트>는 벤자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가 주장했던 ‘사피어-워프 가설’과 홍상수 감독이 주장하던 ‘회전문’ 테제(these)의 결합이 되겠다. 요즘 SF영화는 외계인이 출연한다고 해서 무조건 때려 부수고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담고 있으니 쉽게 생각했다가는 골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조금은 명료하지 못한 결말이 걸림돌이 될 지도 모르겠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던 사피어-워프 가설에서 우리 시대의 갑질문화를 고민해본다. 학생시절 국어시간에 우리말의 우수성에 대해서 인이 박힐 만큼 들었으니 그 중 하나가 존칭이었다. 우리말만큼 존칭이 잘 발달된 언어도 없다면서 어른들에게는 극존대를 하고 만나는 사람과 때에 맞춰 하오체와 하게체를 사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예의가 넘치는 언어냐는 것이다.

물론 부정하진 않으나 현실에서는 대체로 역기능이 더 많다는 게 문제다. 존칭 따지느라 처음 만나면 대뜸 나이부터 묻고 형, 누나, 오빠, 동생과 같은 서열 짓기를 한다. 그렇게 시작된 하대와 공대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명하복의 관계가 되고 “새파랗게 어린 것이! 몇 살이야?”와 같은 계급이 된다. 극존칭을 강요하는 손님 때문에 “커피가 나오셨습니다.” “거스름돈 500원이십니다.”와 같은 어이없는 존대법도 등장해버렸다. 이럴 것 같으면 존칭만 쓰게 반말은 아예 없애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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