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 ① ‘닭의 해’ 첫날 만난 달구지기 오영환 씨

새해 첫날, 곤명 삼정리 ‘생명의 땅’을 가다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가 밝았다. 엄밀히 따져 음력 새해가 되어야 정유년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런 분별에 무뎌진 것이 현실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1월부터 몰아친 조류 인플루엔자(=AI) 발병 사태로 대규모 매몰 살(殺)처분이 잇따랐고 그 여파로 달걀 부족 대란을 겪으면서 ‘닭의 해’를 맞는 지금, 닭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크다. 이런 이유로 2017년부터 다시 쓰는 ‘하병주가 만난 사람’의 첫 주인공은 닭을 기르고 달걀을 생산하는 농부 오영환(51) 씨다.

▲ 귀농해 닭을 키우고 있는 오영환(51)씨가 새해 첫날 달걀을 수거하고 있다.

오 씨의 농장은 사천시 곤명면 삼정리 방광마을에 있다. 방광마을은 사천시청사를 기준으로 사천 관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로 하동군 옥종면에 닿아 있다. 새해에는 하루에 4번 들어가던 시내버스마저 희망택시로 대체하고 끊긴다 하니 사천의 외곽 중에 외곽인 셈이다. 이곳 오 씨의 농장 ‘생명의 땅’을 새해 첫날 방문했다. 방문 허락을 받긴 했으나 AI사태로 민감한 때라 잔뜩 신경이 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농장 입구에 붙은 ‘방역상 출입금지’ 안내문이 걸음을 더 무겁게 했다.

농장 안 분위기는 평온했다. 그리 크지 않은 축사가 볕 바른 곳을 차지한 채 잔잔한 클래식 음악소리가 닭 울음소리와 묘하게 어우러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낯선 이의 방문을 알아챈 수탉들이 “꼬끼오” 하며 홰치는 소리로 고요를 깼다.

“우리 직원들이 손님 온 줄 알고 경계심을 보이는 겁니다. 얘들이 예민하고 똑똑하거든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주인인지 아닌지 구분하죠. 종종 머리 나쁜 사람을 닭에 비유하곤 하는데, 저는 그런 말 들으면 기분 안 좋습니다. 차라리 우리 닭이 더 낫죠.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안 주거든요.”

잘 살기 위한 답 찾으려 귀농 결심

오 씨는 닭을 직원이라 부르고 자신을 달구지기라 칭했다. 닭이 낳아준 알을 팔아 돈을 버니 “닭이 곧 직원”이란 얘기고, 자신은 그들을 지키고 돕는 역할이라는 것. 그러곤 닭을 향한 칭찬에 입이 말랐다. 고위 교육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고 말했던 일을 새삼 떠올리며 닭과 개·돼지를 함부로 입에 올릴 만큼 우리 사회가 인간다운지도 반문했다.

수더분한 외모에 거침없는 언변을 지닌 오 씨. 그는 용현면 신복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자신이 오롯이 농부의 삶을 살아온 건 그리 길지 않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10년 넘게 전기 관련 일로 생계를 이어왔던 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괴감이 컸단다. 지난해 최대 유행어를 빌자면 ‘내가 이러려고 전기기사가 되었나’ 이런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 천주교 신자인 오 씨의 일하는 모습을 '성모 마리아'가 내려보는 듯 하다.

“‘이게 잘 사는 걸까?’ 이 물음을 계속 던지며 살았어요. 전기공사만 잘 하면 사업도 잘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새 일감을 따내기 위해, 맡은 일을 무난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인간적 관계를 신경 써야 했죠. 때론 골프채도 잡아야 했고. 스트레스가 쌓이니 원형탈모증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결심했죠.”

오 씨는 “나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건강하게 살자”고 마음먹고는 2010년 전기업을 접었다. 그리고 ‘나만 잘하면 되는 일’을 찾아 나선 끝에 농사를 택했다. 귀농학교도 다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닭을 기르는 일이었다. 소나 버섯에도 잠시 눈길을 줬지만 손실 부담이 덜하고 자금 회전율이 빠르다는 점에서 ‘친환경 달걀’ 생산을 택했던 것이다. 여기엔 산청에서 무항생제 달걀을 생산하는 지인의 자문이 크게 작용했다.

“산청 둔철에서 ‘간디유정란’을 생산하는 최세현 씨라고 계세요. 그분도 사천이 고향인 분인데, 당시 축산업계의 친환경 품질인증이라 할 수 있는 ‘무항생제’ 인증을 받아 특정한 회원고객들에게만 직접배달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었죠. 구체적인 농사 방법에서부터 포장용기까지 그분의 자문과 도움이 컸습니다.”

무항생제 달걀을 생산하기로 마음먹은 오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축사를 구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본금이 넉넉지 않아 후보지 선택에 있어 폭이 좁았다. 정부의 귀농 지원 자금은 까다로운 규정으로 그림의 떡이었다. 축사 즉 양계장를 바라보는 인식도 걸림돌이었다. 심한 악취를 풍기는 보통의 양계장과는 전혀 다르게 관리함에도 고정관념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 넘는 시간을 다툰 끝에 지금의 농장을 운명처럼 찾았다.

“사실 여기는 학생운동과 농민운동으로 뜨겁게 살다 간 선배의 체온이 배인 곳입니다. 생전에 몇 번 찾았던 곳이기도 했는데, 선배가 돌아가시고 10년 가까이 지날 때까지 이 공간이 이렇게 남은 줄 몰랐어요. ‘너무 멀다’는 생각도 스쳤지만 곧 ‘바로 여기다’ 하고 정했죠.”

오 씨가 말한 선배는 故 김성원 씨다. 그는 1984년 경상대 사범대학에 입학해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대학을 벗어나선 농민운동에 헌신하다 암으로 2001년에 짧은 생을 마쳤다. 오 씨는 그의 2년 후배로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다.

▲ '닭의 해' 기상이 느껴진다.

오 씨의 하루 일과는 빈틈이 없었다. 그가 매일 새벽5시면 일어나는 건 닭도 그 시간에 잠을 깨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하는 건 닭장 청소다. 닭장 바닥은 부엽토와 왕겨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EM(유용미생물군)을 수시로 뿌려주므로 악취가 거의 나지 않는다. 다음은 먹이를 주는 일. 무항생제 달걀을 생산하는 만큼 사료 또한 엄격히 관리되고 생산된 것만 먹인다. 물은 항상 1급수 수질을 유지해야 하고 여기에도 EM을 섞어주는 건 그의 정성이다.

“달걀 수거가 제일 큰 일이죠. 수시로 꺼내줘야 하는데, 하루에 5번 정도 해야 합니다. 꺼내면 표면을 닦아 포장용기에 담아야 하고. 이걸 오전만 서너 번 해야 하니 시간이 금방 가죠.”

화‧목요일은 택배를 부치니 여유가 있지만 직접배달을 해야 하는 월‧수‧금요일엔 더욱 바쁘다. 배달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사천과 진주에 300여 고객이 있다. 지난 5년간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젠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았다는 오 씨. 하지만 전국적 재앙 수준으로 치닫는 AI 사태로 그의 걱정도 컸다. 그리고 나름의 해법도 제시했다.

“경제논리 벗어나 면역력 키워줘야 AI 막아”

“제가 보기엔 AI는 이제 일상이 된 것 같아요. 정부 주장대로 야생조류가 AI 확산의 주범이라면 사실상 예방이 어려운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닭이나 오리의 자체 면역력을 높여 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해요. 지나친 경제논리로 밀식사육 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해주고 건강하게 키워야죠. 굳이 동물복지까지 얘기 않더라도 그래야 최종 소비자인 인간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이건 정부가 정책적으로 깊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발병만으로 일정 구역 안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 하는 지금의 대응 매뉴얼이 적절한지, 전 모르겠어요.”

▲ AI로 농장 입구에 붙은 경계 표지.

그의 설명에 따르면, AI 확진 판정이 나면 해당 지역 반경 500m 안의 가금류는 의무적으로 도살 처분된다. 정부는 피해액의 80%를 보상한다지만 산란계의 경우 향후 기대되는 달걀 생산액에 대한 보상은 빠져 있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단다. 결국 피해는 농민의 몫인 셈이다.  오 씨는 요즘 은근히 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방역활동을 잘 못해 병이 발생하면 피해액의 20%만 주니까 알아서 철저히 하라는 식의 문자 통보를 최근 받았는데, 솔직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제가 시나 축협에서 받은 거라곤 생석회 십여 포인데,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길에 잔뜩 깔아 놨죠. 그렇다고 축사 안에 약을 칠 순 없어요. 작은 미생물들의 선순환 기능에 의지해 닭을 키우고 있는데, 이것들까지 다 죽일 순 없죠.”

그의 말엔 정부나 관계기관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자신의 농사철학에 대한 신념이 어느 정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을 채워줄 정부 정책의 전환이 언제쯤 찾아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점에 대해선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기껏 닭 800여 마리 키우는데, 수만 마리 키우는 농가에서부터 수십만 마리 키우는 기업까지 즐비한 상황에서 축산 환경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이건 사회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야 할 일이죠. 그런데 AI 때문에 새삼 보람도 느낍니다. 제 달걀을 먹는 소비자분들, 사실 얼굴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문제는 없느냐’ ‘AI 때문에 고생 되겠다’ ‘달걀 값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안부를 물어 오십니다. ‘아, 이 일을 하기 정말 잘했구나’ 실감하고 있죠.”

그가 생산하는 무항생제 달걀은 보통의 달걀보다 값이 높은 편이다. 생산단가가 높기 때문이다. 최근 품귀현상으로 달걀 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는 당분간 달걀 값을 올릴 생각이 없다. 자신의 달걀 생산단가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오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생각에 면면히 깔려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다. 닭을 향한, 인간을 향한, 세상을 향한 사랑! 그러고 보니 그의 상품 ‘우리유정란’ 앞 수식어가 ‘사랑과 정의, 평화와 공동선’이다. 그의 새해 소망은 평소의 이 같은 신념에 위트가 더해졌다.

“지난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맞물려 닭이 너무 조롱거리로 전락했어요. 닭을 기르는 입장에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죠. 2017년 새해엔 닭대가리란 말이 좋은 이미지로 바뀌었음 좋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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