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더 무서운 스릴러 - 판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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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더 무서운 스릴러 - 판도라
  • 배선한 객원기자
  • 승인 2016.12.2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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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요즘 영화계가 풀이 죽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현실 때문이다. <내부자들>의 연출자인 우민호 감독은 “같은 배우들을 데리고 다시 한 번 해볼까(했다)”면서 “그런데 지금 이 사태 때문에 영화를 못 만들 것 같다. 이거보다 어떻게 더 잘 만들 수 있겠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에서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한 사람 빼곤 온 국민이 화병 걸릴 지경이지만, 그래도 영화는 대리만족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부쩍 시국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영화들이 많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판타지를 통한 도피나 멜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잡는 코미디가 주가 됐다면, 탄핵이 가결된 요즘 극장가는 ‘시국’을 풍자하거나 반영한 영화가 많다. 두 시간 남짓 달달한 멜로나 상상의 나래를 헤매는 판타지로 현실을 잠시 잊고자 했던 관객의 선택은 이제 현실 직시로 돌아선 듯하다.

때마침 개봉한 <판도라>는 재해와 무능한 정부(지도자)를 결합한 재난 종합 영화인 셈이다. 탄핵이전이었다면 개봉을 못하거나 간판을 걸 시기를 기다려야했을 지도 모를 영화가 시류를 타고(?) 관객을 마주한 것이다. 전작 <연가시>를 통해 재난 영화에 재능을 보여주었던 감독은 연출 면에서 크게 다른 노선을 택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감동 코드, 영웅적 소시민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지진을 통해 원전의 공포를 짐작할 수 있게 된 관객 입장에서는 소재 자체가 체감 온도를 높였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색다른 바는 없다. 다만 영화 속 무능한 대통령은 그래도 현실의 대통령보다는 좀 낫네, 하는 정도다.

영화가 가진 각성의 효과는 무척 크다. 어쩌면 평범한 재난 영화였을 <판도라>는 현실과 맞물려 호러로 읽힌다. 바람이 있다면 평화롭고 정의로운(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이상이 아닌)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 영화를 각성이 아닌 대리 체험으로 보는 날이 얼른 오기를 바란다.

2016년은 자연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공포에 가까운 재난을 경험한 해다. 한국 근현대사를 통 털어 올해처럼 엄혹한 시절이 있었던가. 무섭다.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현실을 목도하고 사는 하루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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