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힐링 썰매>

▲ 「힐링 썰매」조은 글·김세현 그림 / 문지아이들 / 2016

‘인간의 고독은 평화로운 나날에 무디어져 고마움을 모르는 마음으로 인해 깊어진다.’

조선 후기 인조 때 형조판서를 지냈던 선비 이경전이 벗들과 한강에서 썰매놀이를 한 뒤 남긴 ‘노호승설마기’에 담겨있는 문장이다. 선비들의 공허한 고독을 설레임 가득한 여백으로 둔갑시켜 주었던 썰매, 그 썰매가 달렸던 그 겨울밤으로 우리를 안내해주는 책이 있다.

『힐링 썰매』는 이경전 선비의 ‘노호승설마기’를 어린이들이 읽기 쉽도록 다듬어 쓴 글에 간결하고 아름다운 수묵화가 나란히 펼쳐지는 그림책이다. 시, 산문, 동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글의 맛을 일깨워 주는 시인 조은이 글을 쓰고, 우리 조상들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작업들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동양화가 김세현이 그림을 그렸다.

삶과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간결한 이야기와 여러 풍경으로 옮겨놓은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숨소리까지 세세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세상의 많은 것들에 귀 기울인 후의 압축인 수묵화의 미덕을 충분히 살린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여러 벼슬을 지낸 후 노량진 강가의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던 이경전 선비는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던 중 깊은 고독이라는 ‘마음의 병’을 갖게 된다. 그런 그를 위해 멀리서 친구들이 방문한 어느 날 밤, 예순 다섯의 할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찾아온다.

설날을 며칠 앞둔 그 겨울 밤, 친구들과 함께 동네아이들이 끌어 주는 썰매를 타고 꽁꽁 언 한강을 신나게 달리게 된 점잖은 할아버지는 마음의 병을 단번에 날려버렸고, 할아버지들의 썰매를 끌며 설원을 달리던 소년들은 자연이 들려주는 함축된 이야기들에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쑥 자라나게 된다.

한 편의 단편영화 같은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사이 읽는 이의 내면에도 신선한 여백이 생겨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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