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댐 방류로 인한 사천만 해양환경영향과 어장의 경제성 평가’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공개를 두고 어민과 수자원공사가 맞서고 있다. 어민들의 주장처럼 수자원공사가 시간끌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보완해야 할 실질적인 내용이 있는 것인가. 양측의 주장과 논란의 배경을 살펴본다.

수자원공사남강댐관리단 이석천 단장(왼쪽)과 남강댐어업피해보상추진위원회 백인흠 위원장.

먼저 이번 연구용역을 하게 된 계기부터 살펴보자.

논란은 1969년 남강댐이 준공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댐 건설과 함께 홍수조절용 사천만 방류구가 함께 만들어진 것. 이는 담수의 급작스런 유입과 이로 인한 사천만의 환경변화를 예고했다.

사천만으로 방류가 시작되자 어패류에 심각한 영향을 가져와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다. 어민들은 피해보상을 요구했고, 논란 끝에 일정한 보상이 이뤄졌다. 하지만 군부독재정권 아래서 피해액은 축소됐고 그 범위도 방류구 인근 지역으로 한정되어 불만은 여전했다.

1999년 남강댐이 보강되어 담수능력이 3배 이상 늘었다. 여름철 집중호우가 잦아졌고, 남강댐 하류와 낙동강의 범람을 이유로 사천만 방류 횟수와 양이 늘었다. 어민들은 사천만 전체 어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며 적절한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남강댐 방류로 인한 어업 피해 논란은 댐 건설에서 비롯되었다. 22일 한 어민이 사천만 영향평가 용역보고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어민들의 항의는 2003년에 절정을 이뤘다. 피해보상에 앞서 남강댐의 사천만 방류가 사천만 해양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실질적인 어장 피해를 가져오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학술용역을 맡기기로 합의까지 했지만 피해보상을 전제로 하느냐 여부를 놓고 11개월째 진통을 겪었다.

2003년7월4일 남강댐이 만수위에 근접한 상황에서 방류를 막기 위해 어민들이 방류구 아래로 내려갔고, 굵은 빗방울 속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태의 심각성에 당시 건설교통부 관계자가 직접 내려와 마라톤협상을 벌인 끝에 자정을 앞두고 합의한 것이 ‘남강댐 방류로 인한 사천만 해양환경영향과 어장의 경제성 평가’ 연구용역이다.

이후 연구용역을 어느 기관에 맡길 것인가와 과업지시서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를 두고 긴 논쟁을 벌인 끝에 2005년2월18일 경상대 해양산업연구소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오늘날 어민들이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공개를 요구하는 근거는 2003년 당시 합의한 기본합의서에 바탕을 둔다. 이 합의서 제9조6항은 “조사기관은 조사결과보고서를 갑(수자원공사)과 을(어민대책위)에게 동시에 송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어민과 수자원공사 그리고 해양산업연구소가 작성한 합의서.

어민들은 올해 5월 수자원공사에 연구용역을 조속히 마무리해 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수자원공사는 8월25일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이날까지 보고서가 나오지 않자 어민들이 몰려가 항의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남강댐어업피해보상추진위원회와 수자원공사남강댐관리단 그리고 해양산업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하기에 이른다. △9월12일까지 해양산업연구소에서 수자원공사로 용역보고서(초안) 제출 △9월19일까지 수자원공사는 보고서(초안)를 검수하고 전 항목이 모두 보완 완료 되었을 시 해양산업연구소가 어업대책위에 보고서를 송부토록 조치 △합의 불이행시 불이행 당사자가 법적 책임을 짐.

9월22일 어민들의 수자원공사 남강댐관리단 항의 방문은 이 같은 배경 아래 이루어졌다. 길게는 40년, 짧게는 10년의 인고의 시간이 깔려 있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어민들이 조금 더 기다릴 수도 있을 것 같고, 또는 보완할 것이 다소 있더라도 지금까지의 결과를 어민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팽팽히 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학술연구용역 이후의 ‘보상’에 있다. 당초 연구용역은 “피해보상을 전제로 하지 않음”을 밝히고 시작한 것이지만 양측 모두 피해보상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최악의 경우 법정다툼까지 가야하고, 그 경우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용역 발주기관인 수자원공사는 해양산업연구소에 여러 항목에 걸쳐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어민들은 보고서의 빠른 공개를 요구하고, 수자원공사는 미적거리는 걸까.

가장 유력한 것은 연구용역 보고서에 어민들의 주장처럼 어장의 경제적 손실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을 가능성이다. 수자원공사가 해양산업연구소에 보완을 요구하는 것을 살펴보면 판단에 도움이 된다. 즉 지역별 어업피해율, 어업별 실태조사, 연간생산량 조사, 어선별 실태조사, 조업구역조사, 연간생산감소율 등은 어업피해보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이밖에 바닷물의 움직임과 모래의 확산, 담수확산범위와 어업생산 상관관계 등도 보상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현재의 보고서에는 결과만 있고 과정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가 시간끌기를 한다거나 괜한 트집을 잡고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현재 용역기관에 보완을 요구하는 내용은 계약할 때부터 과업지시서에 담겨 있는 부분이고 환경영향이나 경제성 평가에 있어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리고 계약 완료일이 10월14일로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시간끌기’의 족쇄를 채우기엔 뭔가 부족하다.

반면 연구용역기관인 해양산업연구소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계속되는 수자원공사의 자료보완 요구에 신속히 대처하지 않은 것이다. 또 수자원공사에는 보완을 약속하면서 어민대책위에는 더 이상 보완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등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수자원공사로부터 보완 요구를 받는 내용도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계약만료일까지 약속한 보고서를 만들어 낼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런 상황임에도 어민들은 수자원공사에 강하게 대응할 뿐 해양산업연구소에는 미온적이다. 실제로 3자 합의에 따른 ‘9월19일 보고서 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책임이 해양산업연구소에 있음에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또 수자원공사가 용역기관에 요구하는 자료보완사항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누구도 보상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핵심은 '보상'인 듯하다.

종합해보면 수자원공사는 더 세밀한 보고서를 요구하고, 해양산업연구소는 현 상태에서 몇 걸음 못(안)나가고 있으며, 어민들은 더 이상 자료보완 없이 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누구도 보상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핵심은 보상이며, 그에 따른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새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보고서를 더 이상 보완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가지고 수자원공사 본사를 방문하기로 했다”는 어민대책위의 입장은 곧 수자원공사 남강댐관리단과 해양산업연구소도 비슷한 입장정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수자원공사 본사 또는 국토해양부가 이 문제에 최종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10년간 끌어온 남강댐 방류로 인한 사천만 어민의 경제적 피해와 그에 따른 보상 관계는 조만간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 주체 모두 보상을 지나치게 염두에 둔 나머지 방류로 인한 해양환경영향과 그 대응책을 찾겠다는 근본 취지는 살리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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