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럭키 영화포스터.

2002년 <공공의 적>에서 하얀 양복을 쫙 빼입고 시체를 분석(?)하던 유해진을 기억한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양아치1에서 드러난 단역답지 않은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코미디에 최적화 된 얼굴과 연기를 보면서 괜찮은 배우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4년이 흘렀고 세월을 묵히는 동안 유해진은 썩 괜찮은 조연배우->신스틸러->김혜수의 연인->참바다 씨를 거쳐 존재감 묵직한 충무로의 명품 중견이자 인간미 넘치는 예능인으로도 한 다리를 걸쳤다.

<이장과 군수>, <전우치>까지 그는 빛나는 조연이었다. 특히 죽어가는 영화에 심폐소생술을 한 듯한 <해적>은 유해진의 발군의 연기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흥행이었다. 그런 그가 데뷔 20년 만에 단독 주연으로 나섰다. 물론 <극비수사> 등에서 주연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주연인 듯 주연 아닌 주연 같은 포지션이라 해야 옳겠다. 그런데 <럭키>는 유해진이 하드캐리한 부동의 원톱 영화다. 결론은, 전공인 대놓고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성공할 수 있을까란 우려를 깨고 그야말로 럭키하다.

원작보다 나은 리메이크는 드물다는 공식을 깨고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보다 훨씬 탄탄하다. 재미는 개인적 취향이 개입하는 문제라 확언하기 힘들지만 스토리나 플롯 면에서는 확실히 원작을 넘어선다. <럭키>는 관객을 설득하려하거나 훈계하려하거나 억지 감동 코드를 집어넣지 않는다. 그래서 뒷심이 딸린다는 지적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2시간 유쾌하게 웃었다는 반응을 보아 대중적 감성에 부합하는 코미디임은 분명하다.

삼시세끼라는 맞춤형 예능에서 보여준 따뜻한 유해진의 인간미도 영화 흥행에 한 몫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차승원의 영화 <고산자>가 증명했듯 예능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매력이 영화 흥행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영화는 재미라는 본령이 충실해야 관객이 움직이고 인간미도 플러스 알파로 작용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 현대의 관객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유해진이라는 걸출한 코미디 배우가 오래도록 건승하길 바란다. 만재도 앞바다에서 통발을 들어 올리며 아재개그를 하는 노년의 유해진도 좋지만, 온몸에 웃음 에너지를 탑재하고 스크린을 종횡무진 웃음으로 휘젓는 웃기는 할아버지 유해진이 더 좋다. 그는 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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