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아수라 영화포스터 ⓒ 사나이픽쳐

<비트>와 <태양은 없다>로 아픈 청춘의 아우라를 만들었던 정우성과 김성수 조합에, 대세 곽도원, 믿고 보는 황정민, 눈호강인 주지훈까지 모아놨으니 그야말로 환상의 드림팀이다. 이런 배우들이 모여서 액션 범죄 스릴러물이라니, 풍성한 볼거리와 흐뭇한 후일담의 천국을 기대한 관객이 한둘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두 시간이 넘는 영화 <아수라>를 보는 것은 참 힘들다. 영화가 만드는 지옥도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는 고사하고 마음속에 또 하나의 아수라가 꿈틀거린다.

명작과 망작은 한 끗 차이다. 코미디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호러보다 더 무서우며 상식은 판타지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아수라>는 오히려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걸 심리적? 정서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러야 하나.

청불 영화답게 영화의 외피는 잔인하고 살벌하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나쁜 놈들의 향연 앞에서 스토리는 잊게 되며,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잘생김을 과시하던 정우성의 얼굴조차 반쯤 가린 손가락 틈새로 보게 되는 고어한 상황은 여기저기 신음소리를 유발하며 급기야 자리를 뜨는 심약한 관객들도 목도하게 된다. 황정민은 연기신임을 증명하지만 늘 보던 모습을 답습한다. 그 와중에 김원해는 조금은 새롭지만 자주 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절대악은 비련의 여주인공만큼이나 흔한 캐릭터다. 잭 니콜슨, 로버트 드니로, 최민식이 연기했던 절대악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들이 연기한 절대악은 배우와 캐릭터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혼연일체의 공포를 선물한다.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그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는 김성수 감독의 말에 <아수라>도 그런 공포를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나, 배우들은 악인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악인인 것처럼 보이거나가 전부다.

질 좋은 캔버스에 양질의 물감으로 낙서를 한 느낌이다. 하지만 나쁜 영화도 개인의 취향이니, 이 세상 그 누군가에겐 아수라가 아닌 영화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천국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위로는 상업영화가 가져야할 통상의 미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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