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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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인가?'

"유라시아 대륙을 사이에 둔 프랑스와 한국이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진보 매체 공유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어 다가옵니다. 분단은 우리 국토를 둘로 가른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대륙과 단절되면서 우리의 눈은 바깥을 내다볼 때 오로지 미국을 바라보도록 고정되었습니다.

미국적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고 다른 나라를 바라볼 때에도 주로 미국을 통해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일상화되고 내면화된 미국 편향의 시각과 가치관은 노엄 촘스키가 '세계의 창'이라고 부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만남으로써 균형쪽으로 성큼 다가갈 것입니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의 시대가 끝나고 다극 체제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금융위기의 세계화는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와 같은 '탈미'의 시대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듯합니다. 한-미 동맹이나 영어 등을 매개로, 미국 유학파의 대부분을 비롯한 미국 추종 세력이 정,관료계뿐만 아니라 지적 담론과 여론 형성의 장인 대학과 언론에서도 주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가 그 본거지인 미국과 영국에서 비판받고 나아가 부정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여전히 성세를 누리고 있는 것도, 그들이 한국사회 각 부문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 체제의 중심부에서 주류 담론이나 가치관이 바뀔 때에도 주변부에서 지체 현상을 보이는 것은 대개 그런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대안적 가치'를 주장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우리에게 유일사상의 매트릭스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힘이 돼 줄 것입니다.............. "


시민기자는 "날카로운 분석, 따뜻한 시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평이 나있는 프랑스의 진보언론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 한국판을 함께 읽자고 제안합니다.

반성적 사고는 '타인의 시점'에서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뜻이라면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조․중․동 신문, 진보적인 다양한 언론과 매체 등등.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리의 무의식속엔 자기 좋을 대로만 바라볼려는 거울에 의한 '공범성'이 존재합니다.

타인의 시점은 '강한 시차(pronounced parallax)'에서만 나타납니다. 홍세화씨의 지적처럼 미국 중심적 시각은 이제 거울이 아닌 우리의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 세계는 철지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동상을 철거하느라 바쁜데 우리 형편은 그렇지 못합니다.

타인의 시점을 위해 낯설고 난해하지만 대륙의 철학, 문화, 경제, 사회, 미학의 사유를 우리의 '외부'로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동'을 통한 외부와의 대면, '마주침'만이 우리에게 '강한 시차'를 발생시킬 것입니다.

강한 시차는 '다른 가치', '다른 경제', '다른 세계'를 우리에게 제안할 것이며 '저항-제안-대안'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외부를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는데, 외부란 일단 그렇게 파악되고 나면 이미 '내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대신하는 또 다른 교조적인 '유러피안 드림'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내용을 일부 요약정리하고 기자의 의견을 첨부하는 방식으로 진행코저 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넉넉히 봐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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