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규 호남지방통계청 농어업조사과장

내 고향은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아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뛰어 놀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른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으셨다. 가마솥 뚜껑 사이로 모락모락 김이 나기 시작하면 남은 불로 뜸을 들이셨다. 향긋한 밥 냄새가 퍼졌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규야. 밥 묵게 얼릉 오그라” 어머니는 가마솥에 보리쌀을 먼저 넣고 가운데에 쌀 한줌을 앉혀서 밥을 하셨다. 밥이 다 되면 가운데 쌀밥을 한 그릇 담고 나머지는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골고루 섞으셨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밥상에 둘러앉았다. 하얀 쌀밥은 아버지 앞에, 어쩌다 쌀 한 톨 들어있는 거무스레한 보리밥은 형제들 앞에 놓았다. 아버지께서는 한 수저 푸욱 떠서 막내의 밥 위에 올려 주셨다.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이었다. 쌀이 부족해서 혼식을 장려하던 때였다. 점심 시작종이 울리면 반 아이들은 모두 도시락을 책상 위로 올렸다. 그러나 곧바로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일일이 도시락 뚜껑을 열어 담임선생님의 검사가 끝나야 했다. 밥의 30% 이상이 잡곡이어야 통과시켜 주었다.

나도 도시락을 올렸다. 내 도시락은 논 다섯 마지기에 자식들을 줄줄이 학교에 보내야 했던 집안 형편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쌀이 30%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사각 도시락에 하얀 쌀밥을 싸온 짝꿍이 부러웠다. “니는 와 쌀밥 인데? 입 아프게 말했는데 안 들리나? 혼쭐 한번 나 볼끼가?”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부러움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 하얀 밥맛은 어떨까 정말 궁금했었다.

우리나라는 70년대까지만 해도 식량난을 겪는 식량부족 국가였다. 쌀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항상 쌀이 부족했다. 배불리 먹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고 묻는 게 당시 인사였다. 그때 식사는 밥이었고, 그 시절엔 밥 한 끼가 그만큼 중요했다.

내 배만 부르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으레 식사를 했는지 물어주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듯이 쌀은 우리의 주식이자 마음 속까지 따뜻하게 채워준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밥심의 트렌드가 변화하는 추세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평균 쌀소비량은 172.4g으로 전년보다 3.3% 줄었고, 1985년 국민 1인당 연간 128.1kg을 소비했지만 2015년에는 62.9kg을 소비했다. 쌀소비량이 30년 사이에 절반이하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하루 두 공기도 먹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2015년 쌀 생산량은 432만 7천 톤으로 2014년 보다 2.0%인 8만 6천 톤이  증가했다. 492만 톤을 기록한 2009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급자족을 충분히 하고도 매년 쌀이 남아돌 정도로 쌀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락 검사는 없어진지 오래되었고 과거의 추억거리로 회자되는 것은 고마운 일임이 분명하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관세화를 계기로 쌀 산업에 대한 범국민 가치 확산과 쌀 소비촉진을 위해 지난해 처음으로 8월 18일을 ‘쌀의 날’로 지정했으며 올해로 2회를 맞는다.
한자 쌀 미(米)자를 八十八로 파자(破字)해 쌀을 생산하기 위해 여든 여덟 번의 손길이 간다는 의미에서 8월 18일로 정해졌다.

쌀 수입 개방과 지속적인 소비 감소로 인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쌀 산업은 여전히 농촌의 기초가 되는 산업이자 농업의 근간이다. 쌀 산업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과제가 되었고,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막걸리, 떡, 국수, 케이크 등으로 흰쌀도 시대에 발맞춰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밀 위주의 서구식 식습관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의 식문화 트렌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우리 쌀을 원료로 한 음식을 통해 건강한 입맛을 되 돌려주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쌀농사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이 쌀이다. 서민들에게 쌀은 곧 생명이고 조상 대대로 쌀밥에 길들여진 우리는 아직도 밥심으로 살아간다.

이렇듯 쌀은 최근 소비량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의 주식임이 명백하다. 우리 쌀이 귀하게 대접받길 기대해 본다.

언제라도 상관이 없다. 밥 때가 되기 전이든 밥 때를 넘긴 시간이든, 가까운 곳에 있는 이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식사는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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