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국민의 독서를 만화방이 책임지던 시절이 있었다. 만화방에 구비된 무협지와 할리퀸 로맨스가 일종의 스낵컬처였으니 남자는 무협을, 여성 독자는 할리퀸을 읽으며 독서소양을 쌓았다. (심지어 만화방 점주의 안목을 평가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할리퀸 로맨스는 ‘구릿빛 탄탄한 육체에서 풍겨 나오는……’ 이런 묘사가 빠진 적 없을 정도로 식상하고 전형적이어서 ‘할리퀸의 법칙’ 또는 공식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완전히 색다른 할리퀸 로맨스가 탄생했으니 <수어사이드 스쿼드>다.

1)외국을 배경으로 2)고집불통 육체파 남성과 3)말괄량이 여성이 만나 4)에로틱한 사랑에 빠져들고 5)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기본 공식을 벗어나, 제정신이 아닌 여성이 제정신이 아닌 남성에게 반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정신이 아닌 짓을 한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서 영화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캐릭터 가운데 그녀에게만 시선이 꽂힌다. 요즘 식으로 표현해서 ‘하드캐리’하는 그녀의 이름이 ‘할리퀸’이며, 영화의 막이 내리고 나면 황당하게도 슈퍼히어로의 지구구하기 미션이 아니라 그녀의 로맨스에 관한 영화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할리퀸의 사랑을 이렇게 참신하게 보여줬으니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 로맨스가 아닌가.

지구를 지키던 DC의 영웅 슈퍼맨과 배트맨이 죽고, 그들의 역할을 수행할 인물로 사고뭉치 악당들로 대신한다는 발상은 정말 참신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122분이라는 전체 상영시간 가운데 무려 50분이나 할애해서 캐릭터 소개를 마쳤다. 이제 이들의 멋진 활약을 지켜보며 환호성을 지를 참인데, 도무지 언제 뭘 어쩌라는 건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기다리게 만든다. 아무리 블록버스터 영화가 볼거리에 치중해서 개연성쯤이야 찜 쪄 먹는다지만,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실소를 머금게 하는 장면들에게는 호응해줄 수가 없다. 이 일을 어찌 하오리까.

여러 차례 강조하지만 슈퍼히어로만 따지면 Marvel코믹스보다 DC코믹스가 더 낫다. 훨씬 매력적이다. 그러나 영화판에서는 DC 히어로들이 불쌍할 정도로 처참하다. 마치 안 되는 집에 도둑 든다는 말처럼 영화 DC코믹스에 망조가 드는 느낌이다.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지 코믹스와 블록버스터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엉망을 만들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대오각성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변함없을 전망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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