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포스터. (사진= UPI코리아 제공)

스파이 액션의 전형을 확립한 건 제임스 본드가 활약한 007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을 물리친다는 전형적인 구도와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대리만족의 쾌감 말이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해서 먹다간 물리는 법, 먼치킨(munchkin)류의 첩보물을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재탕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이를테면 적아(敵我)가 불분명한 작금에 와서는 또 하나의 적을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유효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끝까지 이런 구도를 고집한다면 007은 이제 외계생명체와 전쟁을 벌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던 관객이 주목한 것이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제이슨 본’이다.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며 동분서주하던 제이슨 본의 활약을 그린 <본 3부작>, 이 시리즈를 지켜 본 이들은 아무래도 3부작만으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기존의 스파이 액션에서 볼 수 있었던 추격 시퀀스를 비롯해서 능수능란한 첩보전술은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홍콩무협의 아크로배틱 무술을 도입해 긴장감을 높이고, 굳이 신무기를 고집하지 않음으로서 현실감마저 높였다. 첩보물의 새로운 전형을 완성한 이렇게나 매력적인 스파이영화가 단 3부로 멈추고 말다니 얼마나 아쉬웠으랴. 007 시리즈처럼 수십 년 간 지속될 아이템이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9년간의 기다림 끝에 도착한 <제이슨 본>은 그래서 반가울 수밖에 없다. 도심 속 추격씬은 보다 세련되어졌고,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근접전투는 여전히 박진감 넘친다. 특히 카체이싱은 명불허전이어서 123분이라는 상영시간이 순식간에 삭제되고 말았다. 그만큼 재미있다.

하지만 끝 맛이 쓰다. 배부르게 먹고 나온 맛집이 알고 보니 MSG를 쓰고 있더라는 개운치 않은 기분이랄까.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미 3부작에서 완성한 이야기를 또 다시 리바이벌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시리즈 전편을 통해서 정체성을 찾아 헤맸으면 이젠 다른 이야기를 할 법도 한데, 구성이 3부작의 마지막 편 <본 얼티메이텀>과 똑같다. 이것이 이미 소비자를 확보한 히트상품의 ‘미투 제품’이라면 그럴 수 있으나, 9년 만에 부활한 시리즈라는 걸 감안해보라. 아무래도 부족하다. 마치 몇 가지 옵션만 추가한 채 신제품이라고 출시한 자동차 같아서, 처음 보는 관객들은 좋아할 지라도 기존의 팬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