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타잔. (이미지 출처= 메가박스)

[뉴스사천=배선한 객원기자] 중장년층 세대 가운데 어릴 적에 나무에 매달린 줄을 타고 “아아아~”를 외치지 않은 이가 과연 몇이나 되랴. 물고기만큼 헤엄을 잘 치며 나무 등걸을 타고 밀림을 누비는 타잔, 그가 나타나면 사나운 맹수도 깨갱~ 꼬리를 말고 도망을 쳤다. 그야말로 마음속의 영웅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이런 영웅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마치 첫사랑을 재회하는 것만큼이나 기대가 되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추억 속의 그 사람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었는데 망가져 있으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 섞인 심정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전드 오브 타잔>의 첫인상은 꽤나 준수하다. 굴곡 없이 평탄한 길을 걸어와 밝은 얼굴을 한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보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얹힌다. 다만 그 시효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사는 것 같아도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언뜻언뜻 비치는 그늘을 엿보는 기분이다.

이야기는 평탄하다. 위기에 빠진 제인을 멋진 타잔이 구해내는 것, 익히 알고 있던 타잔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따라가며 블록버스터 영화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불어 19세기 콩고를 차지하고 고무채취를 위해 아프리카 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주민들의 팔을 잘랐던 악명 높은 ‘레오폴트 2세’의 실화를 차용한 것까지도 훌륭하다. 열강의 침탈을 막는 타잔의 활약은 아이언맨으로 대변되는 현대 슈퍼히어로쯤은 찜 쪄 먹을 만큼 대단하다. (아이언맨보다는 밀림의 덩굴을 쥐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에 좀 더 가까우려나)

이렇게 평탄하고 무난한 스토리가 사실 약점이다. 현재 블록버스터의 전형은 <다이하드>가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전-전-전-결로 이어지는 화끈한 액션이 이어져야 하는데, <레전드 오브 타잔>은 승-승-승-결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랄까. 포인트를 잘못 잡은 느낌마저 드는 상황이니, 마치 외출하면서 가스 불을 껐는지 안 껐는지 괜히 찝찝한 기분이다. 시리즈로 우려먹기 위해서 미리 판을 까는 작업을 하다 보니 그리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자고로 1편이 잘 나가야 2편을 기다릴 수 있고 2편이 망하더라도 3편까지 기대해볼 수 있지 않겠나.

흔히 첫사랑은 환상이 깨어질 수 있으니 만나지 말라고 하는데, 꽤나 괜찮은 첫사랑을 했다면 고민 좀 해보는 게 좋겠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