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친절한 영화이며, 영화를 본 뒤에도 풍성한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던진다는 점에서 건강한 영화다. 아름다운 영상은 보는 즐거움이 있고 수시로 터지는 웃음이 있으며, 반전을 향해가는 분명한 줄거리는 몰입도를 높인다.

다만 원작이 이미 공개된 마당에 새삼스럽게 동성애 소재를 걸고넘어지는 건 볼썽사납다. 자발적 선택에 의한 관람이었을텐데, 마치 묻지마 테러에 당한 피해자연 하는 것 아닌가. 또 한 가지, 남성 이성애자 감독이 묘사한 여성 동성애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원작은 성애장면을 더욱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원작에 대한 지적이 없는 것은 작가 Sarah Waters가 레즈비언 전문학자이기에 준 면죄부란 말인가. 그것 또한 편견이다.

<올드보이>, <박쥐>에 이어 원작을 영화화 한 세 번째 작품이다. 원작의 3부 구성 가운데 2부 중간까지 얼추 비슷하게 달려가더니 이번에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펼쳐나간다. 한두 번도 아니고 왜 이러는 걸까?  흔히 ‘좋은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고 말한다. ‘나쁜 시나리오’에서는 절대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 다만 좋은 시나리오를 발굴하기가 흐르는 물에 사금을 캐는 것만큼 고되고 고되니 차선책으로 좋은 원작 찾기에 주목하고 나선다. 원작의 훌륭한 이야기에 기댈 수 있기 때문이지만, 원작이 좋다고 해서 영화도 반드시 성공하진 않는다. 숱한 작품이 성공보다는 실패에 좀 더 가까웠다는 걸 미뤄 짐작컨대, 가장 큰 이유는 언어의 문제다. 소설의 언어와 영화의 언어.

언어가 다르면 당연히 표현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한다면? 외국인과 소통해야 한다면? 상황에 따라 표현방식은 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설에서 영화로 매체가 바뀌면 당연히 전달방식에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 소설의 언어를 영상으로 옮겼다고 해서 그것이 영화란 말인가? 아니다. 그것은 Movie-type Novel일 수밖에 없다. 이명세 감독이 영상과 음악을 대사와 지문으로 활용했던 것처럼 영화는 영화의 언어가 있다. 그 언어로 원작을 각색하다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기 마련이니 영화 <아가씨>가 소설 <핑거스미스>와 다른 제 갈 길을 간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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