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이웃집 젓가락, 숟가락이 몇 개나 되는지도 다 안다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일가족이 모두 죽는 참상이 벌어졌다. 이런 기괴한 사건이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전염병처럼 퍼졌다. 그리고 그 재앙은 나에게도 닥쳤다. 눈이 뒤집히는 건 당연하다. 곡성(哭聲)을 듣지 않으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개봉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어온 작품 <곡성>이 개봉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축축하고 흥건한 피가 바닥을 적신다. 연쇄살인, 존속살해 등 터부시되는 이야기로 심장을 덜컹거리게 한다. CG로 도배가 된 요즘 영화판에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의 체온을 낮춘다. 그 걸로도 부족해서 타이밍 맞춰서 터져 나오는 배경음악은 두근거리는 고동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 한 편 보려던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기독교 세계관과 토착 무속신앙이 혼재돼 있는 이야기를 강렬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힘 있게 밀고나가는 터라 호불호 논란이 벌어질 것 같더라만 이건 아예 벌집을 쑤셔놓은 모양이다. 실제로 어느 영화평론가는 ‘걸작이 나타났다’며 거품을 물고 찬양하는 반면, 나의 소중한 돈과 시간을 앗아 가버린 쓰레기 같은 영화라고 증오를 토해내는 이들도 있다. (다만 증오의 기저에 종교적 이유가 깔려있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어설픈 영화였으면 이런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만큼 충실한 몰입감으로 관객을 사로잡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반부는 그럭저럭 웃음도 던져가며 완급조절을 하더니 중반부터는 숨을 쉴 여지를 주지 않는다. 2시간 36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고, 그 시간 내내 관객은 뻣뻣한 자세로 용을 쓰느라 진이 다 빠졌다. 자칫하다간 정신마저 휩쓸려갈 정도로 사정없이 흘러간다. 이것이 바로 전작을 통해 알려진 나홍진 감독의 시그니처가 아닌가. 대비되어 있지 않은 마음에는 슬쩍 줄이 갈 수도 있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열린 결말이 아니라 완전히 닫혀 있는 이야기구조인 만큼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즈음에는 명료해야 할 텐데, 흩어진 직소퍼즐을 머릿속에서 다시 끼워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나저러나 압도적인 두려움에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영화, 정말 오랜만이다.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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