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사회를 좀먹는 사악한 무리는 마치 암세포처럼 사회 요소요소에 침투해있다. 이런 사회악을 처단하기 위해 나선 인물이 있으니, 바로 홍길동 되시겠다. 활빈당 조직과 명철한 두뇌로 적의 음모를 분쇄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휼해보자.

아마도 고전소설 홍길동전을 요약하자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전형적인 구성이라 굳이 홍길동전을 빌려올 필요는 없었을 것 같으나 어찌되었건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홍길동이 주인공인 영화다. 악당을 물리치려 서자(庶子) 대신 주민등록도 없는 현대판 홍길동이 나섰고, 현대에 의적(義賊)이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던지 탐정을 직업으로 삼았다. 덕분에 추리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의 작품 속 주인공만큼이나 하드보일드 캐릭터가 불쑥 튀어 나왔다. 전쟁영화도 아닌데 한국 영화에서 이렇게나 많은 총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을지 몰랐다. 아마도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납치당한 할아버지의 손녀 둘과 함께 뒤를 추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온갖 영화의 장르적 클리셰(Cliché)를 몽땅 끌어와서 쏟아 붓는다. 그 중에서 <씬 시티(Sin City)와 <300>과 같은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의 작품은 고스란히 카피해왔고, 캐릭터에서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까지 업어왔다. 안티히어로 마니아들의 환호만으로는 부족할 거라 생각했던지 범용성을 띤 주제로 풀어나간다. 우리나라 영화의 기술수준이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백 번 박수를 쳐도 마땅하나, 과연 흥행할 수 있을까?

흥행만 한다면 속편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결말이라서 정말 궁금하기는 하다. 아무래도 못 할 것 같다만 그거야 두고 볼 일이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문득 “이것들은 모두 한 배에서 나온 개새끼들이다.” 라고 외치던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의 시 ‘지옥에서 보낸 한 철(Une Saison en Enfer)’이 떠올랐다. 속편의 결론은 어떻게 날까나.

개인적으로 제목에서 고개가 옆으로 저어진다. 기왕 하드보일드 탐정을 만들고자 했으면 굳이 홍길동을 끌어올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차라리 영문 제목 <Phantom Detective>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캐릭터성과도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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