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소년, 총각으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단다. 여자와 섹스를 해보고 죽어야 소원이 없겠단다. 소년의 간절한 바람을 들은 두 친구, 할 수 없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나설 수밖에.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될까?

<위대한 소원>은 새로울 것 없는 소재에 진부한 주제 그리고 심지어 윤리적 논란까지 가지고 있다. 느낌상 잘해야 <아메리칸 파이(1999)>나 <몽정기(2002)> 정도의 수준일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죽음을 앞둔 소년과 두 친구의 열혈 분투기라는 설정은 한눈에 봐도 빤하다. 보나마나 ‘열심히 웃다가 나중에 울어주세요’를 강조할 게 분명하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기대치가 낮은데, 이거 웬걸? 신선하다. 예상이 몽땅 빗나갔다.

열심히 웃었더니 눈물이 고이는 즐거운 경험이다. 슬픈 소재로 이렇게 웃기면 반칙인데, 반칙하기 있기 없기?

집에 중환자가 있으면 가족 모두는 죄인 같은 우울을 뒤집어쓰고 산다. 환자는 인생의 비극을 강조하는 캐릭터가 된다. 그런데 가족은 물론이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 소년은 덤덤하다 못해 시쳇말로 ‘개쿨’하다. 여기에 친구의 소원풀이를 위해 종횡 무진하는 두 친구의 좌충우돌은 횡경막이 찢어질 것 같이 유쾌하다.

성(性)을 이야기하되 질척거리지 않고, 우정을 이야기하되 의리만 강조하지 않는다. 휴먼드라마를 표방하며 들이미는 최루성 신파에 질려서인지, 억지 감동 대신 현실감 있는 코미디로 버무린 선택에 맞장구가 쳐진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이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고 하더니, 정말 웃기고 우습진 않다. 솔직히 시종일관 웃음 하나만을 목적으로, 우직하고도 너저분하지 않게 밀고나가는 코미디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다만 영화의 호불호는 심각하게 갈릴 수 있겠다. 성담론에 대한 무지와 편협한 시선이 걸림돌이 될 것이며, 폭력을 교화의 기본으로 삼는 가정과 학교로 그리 탐탁찮다. 그리고 루게릭 환우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다. 이런 불편함 쯤은 감수할 수 있다면 충분히 웃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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