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유년시절, 여름방학만 되면 시골의 큰집에 갔었다. 경호강의 맑은 물에서 하루 종일 물장구치는 게 전부였고, 허기가 지면 툇마루에 앉아서 토마토와 삶은 옥수수를 뜯어 먹었다. 이런 신선놀음도 한철이라 이내 지겨워지면 또 다른 놀잇감을 찾아서 온 집안을 뒤졌다. 그렇게 헤매던 중에 낡아서 부스러지기 직전의 시집 한 권과 만났다. 겉표지에는『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라고 적혀 있었다. 방학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던 짐가방에는 원래 가지고 왔던 책인 양 시집이 담겨 있었다.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서『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초판본 발행 기념행사를 하는데 문득 어린 시절 큰집에서 훔쳐온 시집 생각이 났다. 흉내만 낸 재간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초판본이었고 달달 외우다시피 열심히 탐독했었다. 이 책은 대체 어디에 숨었단 말인가. 그렇게 잊고 있던 윤동주의 시가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걸어 나왔다.

연희전문대학에서 수학하던 시절, 채 영글지도 못한 풋사랑과의 산책에서『별 헤는 밤』이 뛰어나오고 일본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한 후 『참회록』을 읊조린다.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친구 몽규를 보며『자화상』을 그렸고, 참혹한 시대에 태어나 시인이 되려고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며 육첩방(六疊房) 남의 나라에서『쉽게 씌어진 詩』를 울부짖었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세상과 이별을 할 때『서시』를 읊었다. 동주의 삶은 그 자체가 詩였다.

가상증강현실이 상용화되는 마당에 흑백으로 제작된 <동주>는 그저 불편하기만 했다. 그러나 컬러가 아니었기에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는, 어쩌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말도 글도 이름마저 빼앗기고도 시인이 되기를 꿈꾸던 청년, 그늘진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아픔과 쓸쓸함을 흑백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으랴.

영화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구분하지 않는다. 때로는 윤동주의 이름을 빌린 송몽규의 전기 영화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면 또 어떠랴. 서로 서로가 어깨를 결고 함께 나아가던 암울한 시대에 너와 내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라고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에게 했던 말이다. 이 시대에는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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