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화파의 향기가 느껴지는 자연주의 회화

Gustave Courbet(구스타브 꾸르베)로부터 번영했던 사실주의의 화풍은 1870년경부터 여러 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해야만 했다. 사실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조금씩 방향을 달리하는 수 많은 화가들이 등장하였는데, 그 중 한 명이 Jules Bastien-Lepage (쥘 바스티앵 르파주 1848-1884)였다. 그는 프랑스 파리 북부 작은 시골 마을 Damvillers(당비레)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회화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세밀한 풍경의 바탕을 제공한 곳이었다.

르파주의 그림은 다양한 자양분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그가 에콜 드 보자르에서 만난 스승인 역사화파의 거장 Alexandre Cabanel(알렉상드 카바넬)의 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그의 최초의 스승인 그의 아버지가 가르친 자연 풍경에 대한 묘사 등이 르파주 회화세계의 바탕이 된다. 1870년 보 불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에 참전한 르파주는 부상을 당한 뒤 고향에서 머물면서 치료와 새로운 회화에 대한 시도를 한 결과 1873년 파리 살롱에서 할아버지와 그의 정원을 묘사한 그림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1877년에 그려진 이 그림 Les Foins(르 퐁 – 건초 만들기)은 그를 일약 파리 화단에 스타로 만든 그림이다. 역사화파의 인물묘사를 차용한 극적인 인물의 표정과 빛에 의해 반사되는 채색의 느낌을 바탕으로 농민의 일상과 자연의 풍경을 묘사한 이 그림은 르파주를 자연주의 화파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보불 전쟁 이후 프랑스 농촌의 풍경은 도시의 풍경과는 다른 암담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쾡하게 패인 처녀의 눈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느껴진다. 옆에 모자를 덮고 누운 남자는 아버지처럼 보이는데 헤진 옷과 낡아빠진 신발에서 가난이 그대로 느껴진다. 수확을 끝내고 건초를 만드는 작업 사이를 절묘하게 포착한 르파주의 이 그림은 그 뒤 번성할 퐁텐블로 숲의 바르비종파의 위대한 서곡인 셈이다.

이 그림의 성공 이후 르파주의 회화는 역사화파의 그림자를 조금씩 지우고 자연주의로 급속하게 기울게 된다. 1879년에 그린 가수 Portrait of Mlle Sarah Bernhardt (마일 사라 베르나르의 초상)는 빛의 절묘한 설정을 이용하여 그에게 뢰종 도뇌르를 안기게 된다. 1880년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하여 1883년 프랑스로 돌아온 르파주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알제리에서 회복을 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1884년 36세의 꽃다운 나이에 갑자기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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