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 아시아를 품다’] 4편 솔로에서 발리까지

‘1318 아시아를 품다’는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가 외교부의 지원으로 진행하는 공공외교관 프로젝트이며, <뉴스사천>은 그 진행과정을 동행취재 해 6회에 걸쳐 싣는다.

▲ 청소년 공공외교관 일행이 얀또 씨 가족들에게 영상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껀달에서 보낸 벅찬 감동의 시간을 뒤로하고 10명의 청소년 공공외교관들은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옮겼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라며 문화박람회 내내 긴장감을 감추지 않았던 이정기 센터장의 얼굴도 조금 풀렸다. 남은 일정은 준비해온 이주노동자들의 영상편지를 그들 가족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3시간을 달려 부디 산또소 씨 집에 도착했다. 벌써 날이 어두웠음에도 가족과 동네주민들의 환대가 뜨거웠다.

다시 이동, 밤 11시가 다 되어서 아스무니 씨 집에 도착했다. 아스무니 씨는 전날 시장의 초대를 받아 껀달시청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았던 사람으로, 그는 경남 사천에서 3년째 일하다 휴가를 얻어 귀국한 상태였다. 일행은 아스무니 씨 가족과 일가친척까지 다 소개를 받고, 산또소 씨네에 이어 두 번째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야 잠이 들었다.

▲ 야스무니 씨 가족들에게 안마하고 있는 길현과 원호.
아스무니 씨 집은 수라카르타(=옛 ‘솔로’)의 한 시골에 있었는데, 한때는 이곳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탓에 일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 이후 확대했단다. 학원을 함께 시작한 그의 동료가 시내에서 한국어학원을 계속 운영한다고 해서 다음날엔 그 학원을 방문했다.

원장인 돈중 우라꾸사 씨에 따르면, 학원은 3개월 과정이다. 6개월 마다 있는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 주관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40~50명씩 응시해 합격한다.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선 이 시험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만큼 인기가 좋단다.

사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는 이미 앞에서도 확인했다. 야니 씨가 운영하는 껀달의 진주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첫 방문지였던 인드라마유에서도 높은 한국어 인기를 실감했다. 건물을 새로 짓고 교실을 넓히는 작업도 한창이었다. 큰 꿈과 부푼 기대로 한국을 찾는 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지, 우리의 고민과 준비 또한 커야 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 양혜와 가은이 한글교육을 하는 모습.
가은과 양혜가 이 학원생들을 위해 짧은 특강을 마련했다. 한국에서부터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지 글자카드까지 동원하는 정성을 보였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보기엔 너무 어려운 주제를 잡았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 될까 말까 한 사람들에게 연음법칙과 구개음화현상이라니. 다행히 가르치고 배우려는 열정만은 가득했다.

다시 아스무니 씨 집으로 돌아온 일행은 짐을 쌌다. 그리고 떠나기 전, 청소년들은 아스무니 씨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토닥이며 안마를 한 것이다. 누가 먼저 제안하고 시작한 것인지는 몰라도 중2 사춘기 소년 태영과 길현까지 나선 걸 보면 자연스레 우러난 한마음이었으리라.

인도네시아에서 전할 마지막 영상편지는 얀또 씨 것이었다. 그는 영상편지 제작 과정에서 폭풍눈물을 쏟아 지켜보는 모든 이의 마음을 숙연케 한 바 있다. 그가 한국으로 떠난 지 한 달 만에 아기가 태어났음에도 아직 직접 보지 못한데다 가족이 너무 그리워 울컥 했다고 털어놨었다.

▲ 남편의 영상편지를 보며 눈물짓는 얀또 씨 아내
구불구불 이어진 들길과 언덕길을 지나 드디어 그의 가족을 만났다. 모니터에서 남편을 확인한 그의 아내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얀또 씨 어머니도 눈물을 훔치느라 연신 고개를 돌렸다. ‘60년대 독일로 떠났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남은 가족들도 저렇게 애를 태웠을 테지.’

영상편지 전달을 끝낸 공공외교관 일행에게 휴양의 섬 발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캄보디아로 떠나기 전 갖는 짧은 휴식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휴식을 누리기까지 과정 또한 만만찮았다. 저녁 7시에 얀또 씨 집을 떠나 밤새 차로 달린 뒤 이튿날 아침 8시30분에 바뉴왕이 항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10분 남짓 배를 타고 건너니 발리섬인데, 다시 우리가 머물 숙소까지 네댓 시간을 달려야 했다.

숙소는 정갈했다. 더욱이 수영장을 갖춘 데다 한국음식점을 함께 두고 있다는 사실에 청소년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부리나케 동이 났다. 그러곤 빈 뚝배기와 밥그릇 사이로 울리는 투정 한 마디. “아, 맛이 왜 이래. 엄마가 해주는 거하고 달라.”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은 확실히 다른가보다.

저녁식사 뒤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는 동안 이정기 센터장은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그 손님은 송정아 씨로, 11년 전 발리에 건너와 살고 있는 사업가다. 우리가 묵는 호텔을 얼마 전까지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는 그녀는 발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들려줬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 국교지만 발리에선 대부분 힌두예요. 이들은 사원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죠. 제사 때문에 일을 쉬는 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를 잘 이해 못해요. ‘우리보다 못 산다’는 생각에 무시하는 경향도 있어요. 그럼 그대로 돌아옵니다. 그들도 우리를 무시하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엔 좀 달라졌어요. 한류 열풍 덕도 있는 것 같고, 중국인들이 너무 설쳐서 상대적으로 나은 평가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관광이든 이민이든 잘 준비하고 나와야 합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겠다는 마음자세가 가장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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