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선택하여 이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선대의 친일행각에 대해 그 후손들의 대응하는 자세를 보면 극과 극이다. 어떤 사람들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후손으로서 대신 사과하는가 하면 어떤 자들은 아비나 할아비의 친일매국 행위를 감추거나 심지어는 애국으로 오도하며 억지를 부린다. 이런 각각의 후손들의 행동양태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는가?

인간들에게는 양심이 있다. 친일 행위를 한 대부분 사람들도 마음 한 구석에 부끄럽거나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비록 생전에 공개적으로 반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후손들이 대신 반성하고 사과하면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마음은 누그러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같은 DNA를 주고받는 게 혈족이 아닌가, 선량한 자손을 보면 그 조상들도 선했을 것이라 여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 것인가? 당연히 아비, 혹은 할아비를 참회나 반성과는 거리가 먼 ‘뼛속까지 친일’인 고약한 매국노라는 생각이 확 들지 않겠는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17일 한 유력 정치인의 부친 김 모(1905~1985)의 친일행적과 근거 자료를 공개했다.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44년에 아사히 신문에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이라는 제목의 비행기 헌납 광고를 실명으로 게재했다. 경북 영일군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지 2달 만인 1942년 2월 총 8대의 군용기를 헌납했다. 김 씨는 당시 이 지역에서 당선된 경북 도회의 의원이자 조선임전보국단 상임이사와 사업부장을 지내고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그의 친일행적 검증에 나서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광복 70주년이었던 지난 8월15일에 맞춰 출간된 김 씨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다. 책에서는 일제강점기 김 씨의 삶을 ‘극일을 이겨낸 망국의 한’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평전을 통해 친일을 애국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이 검증에 착수한 계기가 됐다‘고 밝히며, ‘기본적으로 연좌제에 반대하지만 친일행위자의 후손이나 연고자가 친일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을 하는 경우, 친일행적을 부인 또는 왜곡하는 경우, 친일청산운동을 방해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밝혔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김 씨의 친일 행적을 검토한 결과 <친일인명사전> 등재 기준에 부합한다. 향후 개정판을 낼 때 수록대상이 될 게 확실하다”, 고 말했다. 김 씨의 후손들은 그의 음덕으로 풍요한 삶을 보내왔다. ‘조상 덕’을 본 것이다. 그런데 부친의 친일 행각 때문에 이제는 ‘조상 탓’을 할지 모르겠다. ‘자식이 부모를 택할 수는 없기에 고인이 된 부모의 과오를 숨길 수 없다’란 간단한 진리를 외면한 탓이다. 문득 그가 깨끗이 부친의 친일행각을 사과했으면 어쨌을까하는 생각이 났다. 아마 대인의 풍모를 보였다는 상찬을 받지 않았을까? 이제 추석이다. 경건하게 조상의 음덕을 기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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