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차세대 중형위성 1단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KAI가 지난 5일 정부와 본계약을 맺고‘차세대 중형위성 1호기’공동개발에 들어갔다.
사천시와 KAI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그 끝을 헤아리기 힘들다. 사천시는 업무협의 중단을 선언했고, KAI는 본사 이전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서로를 겁박하는 모양새다. 사천시는 “R&D센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소통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주장하고, KAI는 “여론호도에 지역이기주의 조장”이라고 날을 세운다. 누구의 말이 맞고 누가 틀린가? 시민들은 누구의 편을 더 들어줄 것인가? 이런 판단과 결정은 충분한 정보와 사실관계 파악 속에서 나와야겠지만 현실은 제약이 따른다. 갈등의 주체 역시 쟁점을 또렷이 보기보다 격앙된 감정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음이다. 이에 이번 사태의 출발점에서 지금까지 경과 과정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사건의 단초-우주사업은 어디서?
이번 갈등의 핵심 중 하나는 우주사업에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우주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방침이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꾸준히 나왔다. 급기야 2013년 11월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우주기술 산업화 전략(안)’까지 부처합동으로 내놓으면서 우주사업을 연구개발 단계에서 산업화 단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던 중 KAI는 지난 9월 5일 정부와 본계약을 맺고 ‘차세대 중형위성 1호기’ 공동개발에 들어갔다. 차세대 중형위성 사업은 정부 주요 국정과제인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의 핵심 사업이다. 2025년까지 총 3단계로 나눠 위성 12기를 개발해 발사하게 되는데, 전체 사업예산은 8426억 원이며, 운영비 등을 포함하면 약 1조원 규모에 이른다.

KAI는 지난 7일 이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부하면서 위성조립을 어디서 할 것인지 정확한 위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진주/사천에서 진행한다’는 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앞서 우주사업의 또 다른 핵심사업인 ‘한국형발사체 총조립 사업’도 KAI가 맡게 됐는데, 이 생산설비도 어디에 갖출 것인지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2016년 완공을 목표하는 3300㎡ 규모의 발사체 총조립공장 설계를 10월부터 시작한다고만 밝혔던 것이다.

#사천시가 느끼는 배신감이란?
이 궁금증에 대한 단초는 8일 나왔다. 사천시와 경남항공산업협동조합, NH농협은행 경남본부가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한 뒤 오찬장에서 KAI 관계자가 “오는 14일 KAI와 진주시가 R&D 관련 MOU를 맺는다”고 사천시에 알리면서다. 시는 세부내용을 확인하려 노력했으나 쉽게 확인할 수 없었다. KAI가 관련 정보를 적극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천시 측에 따르면 만24시간이 지나서야 A4 1장으로 정리된 문서를 구할 수 있었다.

▲ 14일 오전 사천시의원들과 도의원 등이 KAI를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다.
송도근 시장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들은 이 과정에 심한 불쾌감을 느낀 모양이다. 진주 상평공단 내 100평 정도가 필요하다는 당초 정보와 달리 최대 5000평 정도가 필요하다는 내용 등에 비춰 위성이나 발사체 조립시설이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배신감은 더 커졌을 것이다. 결국 시는 A320 날개공장의 산청 건립 과정이나 KAI R&D센터 허가 과정에 시가 지나치게 편의를 봐주다 공무원이 징계를 받게 된 점, 최근 MRO 사업부지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는 점 등을 떠올리며 “KAI와 업무협의 중단”이란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강수를 일찍 날린 셈이다.

이에 KAI는 즉각 대화를 시도했으나 만남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사천시는 “R&D가 어디 가는지는 관심 없다. 이 사태를 시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 자료와 소통방식에 대한 개선책을 갖고 와라”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입장이고, KAI는 “MOU 체결까지 연기하고 대화 노력을 계속했으나 시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KAI는 왜 강경자세로 돌아섰나?
KAI는 이 문제가 불거지자 우주탐사센터의 입지 문제는 KAI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미래부와 항공우주연구원에 결정권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삭감된 예산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에 대전으로 갈 뻔했던 우주탐사센터를 진주로 가져온 것이기에 사천으로선 피해보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홍준표 지사와 여상규 의원 등에 중재 역할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홍 지사는 MRO사업계획서에 먼저 서명함으로써 송 시장을 은근히 압박했다. 여 의원도 내용 파악에 주력했고, 당 내부에는 “차분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KAI노조에서도 사측과 지역 시민사회단체, 사천시 등과 접촉하며 사태의 조기 수습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한편 KAI 내부에서는 ‘비도덕적’ ‘비윤리적’이라는 기업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임직원들 가운데는 “우리가 왜 악덕기업인가?” “이런 말까지 들으며 일해야 하나?” “사천시에 적극 해명을 요구하자!” “차라리 본사를 옮기자!” 등등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에는 그 동안 사천시와 지역사회에 받은 스트레스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 사천시는 14일 오후 5시 전 실과소장과 읍면동장, 시민사회단체 임원, 봉사단체 간부 등을 모아 긴급현안 설명회를 가졌다.
도의 중재 속에 협의점이 모색되던 중 14일 사천시가 읍면동장 등 200여 명을 모아 현 상황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자 KAI는 입장을 바꿨다. 사천시가 시민들에게 사실을 왜곡해 전달하고 여론을 호도한다고 주장하며 강경자세로 선회한 것이다. 특히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사천시의 경영간섭이 지속된다면 KAI는 본사 이전도 검토할 것이다”라고 발표한 대목에서는 배수진을 쳤다는 느낌마저 든다.

#해결 방안은 없나?
KAI는 자신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예정된 행사들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경남도의원과 사천시의원 등 지역 정치권과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송 시장이 여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과 관계가 불편한 점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KAI의 강경한 입장 표명에도 사천시는 자극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사천시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지역민들이 KAI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두고 사천시 주장으로 착각하지 말란 설명도 덧붙인다.

이렇게 보면 쟁점은 크게 두 가지가 남는다. ‘업무에 있어 긴밀한 소통과 협력’, 그리고 ‘우주사업 밑그림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그것이다. 이는 비단 이번 사태가 아니어도 항공우주산업을 주도해 나가야할 사천시와 KAI가 반드시 풀고 가야할 과제다. 상호 소통에 있어 뭐가 걸림돌이고, 지금껏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풀어야 한다. 또 우주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KAI가 어떤 고민을 갖고 있고, 사천이 갖는 지역적 한계는 무엇인지 정확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쌓인 감정부터 걷어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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