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협의 없어 배신감…생산시설까지 진주 둘 수도”
KAI “급한 상황에서 빚은 오해…결정된 건 없다”

▲ 신축 공사 중인 KAI통합개발센터. 사천시는 이 센터 건립에 무리하게 도움을 주다 관련 공무원이 징계를 받은 일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진주시와 우주탐사 R&D센터 설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사천시가 단단히 화났다. 항공MRO 산업 유치 활동을 포함해 KAI와 벌이던 모든 협의와 협력에 대해 중단 선언까지 내놨다. <관련기사>

우주탐사 R&D센터 소식은 지난 8일 사천시와 경남항공산업협동조합, NH농협은행 경남본부가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상생협약을 맺을 때 처음 나왔다. 당시 오찬장에서 KAI 관계자가 “이제부터 우주산업도 본격화 한다”며 “오는 14일 진주시와 MOU를 체결할 예정”이라고 말하자 송도근 시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는 후문이다. 관련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던 사천시 관계자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이후 며칠 간 사천시는 구체적 사업내용과 배경을 파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사천시민참여연대가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연 다음날인 11일 오전, 사천시 항공 관련 부서 분위기는 여전히 격앙돼 있었다. 구종효 산업건설국장은 “이번 일에 시장님은 물론이고 항공업무를 맡고 있는 모든 직원들이 분노하고 있다. 평소 MRO다 뭐다 하며 얼마나 자주 만나고 소통하려 애써 왔는데, MOU(=양해각서) 체결계획까지 다 잡아놓고 통보하듯 알려준 것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어려운 제안이 많았다. 지금 짓고 있는 KAI R&D센터도 현 위치에 들어서기 어려운 걸 공무원이 징계까지 받아가며 어렵게 해결해 줬고, MRO 사업부지 확보도 급하다고 해서 없는 살림에 시비 60억(원)을 책정해 놨다. 오죽하면 ‘KAI T/F팀’이라는 담당부서도 만들고 KAI 직원을 위한 자리까지 만들어 놨겠나. 그런데도 이렇게 나오는 건 윤리적으로 안 맞다”며 섭섭함을 전했다.

항공산업과 최일 과장의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컸다. “R&D센터가 어디에 들어서는 지는 사실 다음 문제다. 필요할 때 온갖 협조는 구하면서 정작 우리에게 중요하고 민감한 일은 의논하지 않는다는 게 괘씸한 일이다. 한두 번이 아니다. 신뢰니 상생이니 파트너십이니 하는 말을 쓰지나 말든가! 이 시간 이후로 KAI와 진행하던 모든 업무에 관한 협의를 중단한다. 시장님의 뜻이다.”

사천시의 이런 방침은 10일부터 실행에 옮겨졌다. 이날 오후 5시 반에 진행할 예정이었던 사천시-KAI 사이 ‘1단체 1하천구역 사랑모임 자매결연 협약’에 이은 환경보호활동이 사천시 거부로 취소됐다. 또 오는 15일 국토부에 제출을 앞두고 있는 ‘항공MRO산업 사업계획서’에 송도근 사천시장이 서명을 거부했다. 송 시장은 KAI의 접촉 자체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KAI는 매우 곤혹스런 표정이다. KAI 관계자는 “우주탐사 R&D센터는 아직 예산도 확정되지 않았고, 장소도 확정되지 않았다. MOU도 급박하게 계획된 것이어서 알릴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며 사천시가 오해 풀기를 바랐다.

KAI는 내년도 국가예산 책정 과정에 우주탐사 R&D뿐 아니라 KF-X 등 항공과 국방 분야 여러 사업이 얽혀 있는 만큼 다른 불똥이 튀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모습이다.

한편 이번 사태에 사천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우주탐사 R&D센터에는 연구시설뿐 아니라 생산시설까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KAI 측 설명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KAI 관계자는 “예상 사업부지는 5천 평쯤 된다. 여기에 교육시설과 생산시설이 들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생산을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는 만큼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여상규 국회의원은 차분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일부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확인 결과 생산시설, 특히 발사체 조립시설은 진주에 들어설 수 없다고 하성용 사장으로부터 직접 확인했다. 그러니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생산시설이 들어설 장소에 대해선 KAI 노동조합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KAI노조 곽상훈 정책실장은 “연구시설은 몰라도 생산시설은 본사가 있는 사천에 둬야 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사측에 이런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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