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화가 프레데릭 바질(L'Atelier de la rue Condamine 1870)
1862년 그의 나이 21세 때 파리로 진출한 바질(Bazille)은 그의 인생을 바꿀 몇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Pierre-Auguste Renoir)와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였다. 이들과 교류 중에도 바질(Bazille)은 의학 공부를 계속하여 1864년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한 뒤 본격적으로 화가 수업을 받게 된다.
바질(Bazille)이 화가 수업을 받은 곳은 인상파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스위스 출신의 화가 C샤를 글레르(harles Gleyre) 스튜디오였는데 위의 두 사람을 포함하여 인상파의 선구자 클로네 모네(Claude Monet)도 같은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공부하였다.
바질(Bazille)은 당시 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개인 아틀리에를 소유하고 있었고 여기에 당시 유명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이 그림 콩다민 가(街)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 (L'Atelier de la rue Condamine 1870)은 바로 그 아틀리에에 동료들이 방문한 순간을 묘사한 그림으로써 왼쪽 계단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이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Pierre Auguste Renoir)이고 그 위 계단에 서 있는 사람은 유명한 저술가이자 소설가이며 평론가인 에밀레 졸라(Emile Zola)이다.
그 다음은 이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에두아르트 모네(Eduard Monet)와 모자를 쓴 아직은 30대인 클로네 모네(Claude Monet)가 서 있다. 그 다음이 이 방의 주인인 바질(Bazille)인데 자신의 그림을 여러 사람에게 설명하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없으나 당시의 저명한 음악가 중의 한 명이었을 것이다.
바질(Bazille)은 이 작품을 끝으로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입대한 한 달 후, 보불 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바로 전장에 투입된다. 그는 전투 중에 지휘관이 사망하게 되자 대신 부대를 이끌다가 29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