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폭발 사건으로 촉발된 남북 간 군사대치 상황이 24일 밤까지 이어졌다. 벼랑 끝에서 양 측이 만나서 무박 3일간 지리 하게 협상을 이어갔다. 어차피 사안 자체가 단순한 것이라 더 이상 협상이 진행될 수는 없을 터이었다. 결렬이던지 타결이던지 양자 결단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 생각하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속보는 TV에 뜰 것이니 거실에서 TV를 켜 놓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영화 한 편이 막 시작하려 한다. 생전 들어 보지 못한 영화인데 제목은 ‘세계를 구한 사람(The man who saved the world)’ 이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보기 시작했는데 기대이상이다. 영화를 보는 도중 속보로 ‘남북 협상 타결, 새벽 2시 기자회견’이란 자막이 떠서 2시에 안보실장의 브리핑을 간단히 보고는 다시 채널을 돌려 영화에 몰입했다. 회담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더 흥미진진했던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은 구소련 방공사령부 상황실 책임자인 소련 장교이다. 1983년 어느 날 야간 근무 중에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소련을 향해 미국의 미사일이 발사된 것이다. 또 연이어 2기의 미사일이 포착되었다. 단계별로 검증하니 틀림없다. 이럴 경우 매뉴얼은 비상을 선포하고 소련 미사일을 미국으로 향해 대응 발사시켜야 하는 것이다. 상황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3차 세계 대전, 아니 핵전쟁이 벌어지려 하는 것이다. 부하 장교들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라고 독촉하지만 주인공은 최후의 검증단계인 레이더 포착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마지막 레이더에 잡히지 않은 것이었다. 미사일 발사가 아닌 것이다! 외롭게 핵전쟁을 막은 그는 상황일지를 기록하지 않았다는(위급 상황에서는 누가 한가하게 일지를 쓰고 있을 것인가?) 사소한 이유로 징계를 받고 군에서 퇴출되어 폐인으로 살아간다. 이런 그가 21세기에 들어와서 그 사실이 조명을 받고 갑자기 영웅 대우를 받으면서 미국으로 초청 받는다. 또 평소 흠모하던 영화배우 캐빈 코스트너의 초빙을 받는 뜻밖의 행운도 누린다. 코스트너가 묻는다.

“만약에 당시 오판하여 미국으로 핵미사일을 날려 보냈다면 얼마나 인명피해가 있었을까요?”

“1차로 인구의 절반인 2억 명 정도가 사상되었을 것이고, 또한 미국도 대응 공격을 했을 터니 소련도 그만큼 정도가 피해를 보았겠지요. 그 후 핵구름이 지구를 덮을 것이며 태양 빛은 지구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결국 인류는 멸망하고 지구는 사막으로 변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남북이 전면전에 돌입한다면 온 한반도는 폐허가 되고 우리 민족의 대부분은 사상되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문명이 완전히 파괴된 석기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문득 났다. 그런데도 전쟁불사를 주장하는 치킨호크들이 있다, 군에도 가 본적도 없으면서 호전적인 허풍만 때리는 자들을 미국에서는 치킨호크(Chickenhawk)라 한다. 세상살이가 얼추 비슷하여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도 그런 사람들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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