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미안해 하지 마라" 가족에게 남긴 유언일 뿐


아, 인간 노 무현!

언론이나 세인들이 유서 내용을 두고 제각각의 안목으로 판단을 하는 모양이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처지에서 나름대로 재단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는 노 대통령의 유서 중의 한 구절 ‘미안해하지 마라’라는 구절을 주목한다. 이 구절에 있어서도 어떤 언론은 ‘국민들에게 자기의 죽음에 대해 미안해하지 마라.’고 했다고 해설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국민들에게 드리는 말씀이었을까? 이렇게 해석을 하는 언론은 인간을 몰라도 정말 모르고 인간 노무현을 몰라도 한 참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염치가 있는 정치인이었다. 정말 세속 정치인답지 않게 염치가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박연차에 연루된 다른 정치인들의 답변 수순은 대충 이렇다.
박연차를 만난 적도 없다.” 그리고는
“만나긴 했지만 돈을 받은 적은 없다.” 그리고는
“돈을 받았지만 대가성은 없었다.” 그런 후...
“어떤 정치인들은 법정에서 사실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어떤 정치인들은 아직도 법정에 서지 않았기에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이들 하류 정치인생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처음 유서 내용을 접한 순간, ‘미안해하지 마라.‘라는 이 구절에서 그동안 필자가 믿고 싶어 했던 진실의 본말이 확연히 드러났다. ‘미안해하지 마라’ 이 구절은 누구에게 한 말이며, 무슨 뜻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유서를 통해 ‘유훈 정치’를 하려고나 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 구절 내용은 철저하게 부인과 자식 남매에게 한 말이다.


시종일관 가장 근접 거리에서 사건을 지켜보았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6월 2일자 인터뷰 기사를 보면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관련한 대충의 내용이다.

“대통령이 ‘박연차’돈을 안 것은 금년 2-3월께다. 정 비서관이 봉하에 내려오면 늘 대통령을 먼저 뵈었는데 그날은 여사님을 먼저 만났다고 한다. 대통령이 의아하게 생각해 뭘 나는지 두 분이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권 여사가 넋이 나가 울고 있고 정 비서관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제야 정 비서관이 돈 이야기를 했고 나중에 정 비서관 표현에 의하면 ‘탈진 상태에서 거의 말씀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증언은 계속 이어진다. 관련된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우선 첫 사과 글을 올릴 때만 해도 3억원과 100만 달러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다. 그 돈이 그냥 빚 갚는데 쓰인 게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서 집 사는데 쓰인 것을 알고 충격이 굉장히 크셨다. 그때부터는 법적책임과 별개로 도덕적인 책임을 통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법적인 책임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우리는 자신했다. 그런데 도덕적 책임을 통절히 느끼면서, 검찰하고 법적 책임을 놓고 다투어야 하는 상황을 대통령은 참으로 구차하게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다 받았다고 인정해 버리는 것이 낫지 않나’라고 여러 번 말했을 정도였다.”

또 이런 말도 덧붙인다.
정작 우리는 여사님 자신이 모든 원인을 제공했다고 자책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할 수없이 자리를 함께 했지만, 여사님은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들어오면 다른 자리로 가고는 했다.” 이런 장면이 눈에 선하지 않는가? 부인이 ‘사고’를 치고 남편이 그 뒷수습을 하느라고 골머리를 앓는 여염집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쯤에서 여러 가지 정황을 상식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권 여사는 자식들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탓에 본의 아니게 외국으로 나가야 했던 자식들에게,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서 가능하다면 무엇인가 보상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쩔 수없는 모정이고 상식적으로 이해도 된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재임 기간 중에 별다른 부수입(?)은 없었을 것이고, 지난 20여 년간 후원자였던 박연차로 부터 들어온 돈에 대해 죄의식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는 대통령이기에 일을 봐주고 싶어도 봐줄 처지도 아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대가 성 없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간에 심부름을 한 정 비서관도 비슷하게 판단했을 것이고 사심 없이 이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 흔히 있는 ‘배달 사고’에 관한 뒷이야기가 없다. 이런 비리가 혹 있었다면 ‘친절한 금자씨’보다 더 친절하게 대국민 홍보에 열심이었던 ‘친절한 검사씨’가 가만있었을 리가 없지 않는가.

또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예우’를 표명한 현 정부에 대한 상식적인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설마 물러나는 대통령이 받은 선물에 대한 시비가 있으랴!’ 금액도 전직들에 비하면 소소한 것이고, 정치 자금도 아닌 것이라서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여사와 정 비서관의 ‘나이브’한 생각이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착각을 해도 크게 착오를 한 것이다.

도하 언론에서, 그리고 이름깨나 있다는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노 대통령이 몰랐을 리가 없다. 부인에게 탓을 돌리다니 비겁하다.” 사람의 눈에는 사람이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다. 이런 자들의 상식에는 ‘노 대통령이 몰랐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부인과 함께 알콩달콩 의논하며 뇌물을 받아 챙기고, 사달이 나면 상황, 사안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여 ‘모르쇠’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언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자신이 몰랐던 부분을 ‘자신이 받았던 것’으로 할 작정도 했다. 범부 노무현이었다면 능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인 것이다. 그것도 새로운 가치를 펼치려고 했던 대통령이었다. 자기 혼자 책임지고 정리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에 몰린 것이다. 이럴 때 염치를 알고 명분을 중시하는 인간 노무현의 선택은 한 가지 뿐이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전직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노무현으로 돌아가 한 평범한 가장의 마음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가장을 대신하여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가장 아닌 가장 역할을 해 온 부인에 대한 미안함, 연민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부인이 이런 일을 하게 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서에서 말한다.
“ 미안해하지 마라. 원망도 하지 마라. 운명이다.”

마지막 순간에서까지 인간 노무현은 겸손하다.
‘집 가까이에 작은 비석’하나를 주문하고 있을 뿐이다. 자결이란 무서운 결단을 내리면서도 그지없이 담담하고 고요하다. 스스로를 한껏 낮추면서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가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처연하다 못해 아름답다.

온 국민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추모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가 영웅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아버지요, 지아비이고 그리고 불의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그지없이 다정한 진정으로 겸손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노무현은 죽음보다 더 깊은 외로운 고뇌와 결단으로 온 겨레의 가슴 속에 위대한 인간으로 부활했다.

인간 노무현은 백척간두에서 한발을 내 디딤으로써 역사 속으로 스스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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