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사천-국립진주박물관 공동기획]사천, 그 3000년의 시간을 더듬다
⑧ 사천문화재 속 숨은 이야기

국립진주박물관이 4월 16일부터 7월 30일까지 제12기 박물관대학을 운영한다. 주제는 ‘사천(泗川)’이다. 본촌리 유적과 이금동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사천 3000년의 역사를 아우른다. 뉴스사천은 박물관의 협조로 강의내용을 정리해 지면에 옮긴다.(편집자주)

▲ 사천 선진리성 전경.
(강사 : 김상일 사천시청 학예연구사) 문화재란 무엇인가. ‘조상들이 남긴 유산들 가운데 삶의 지혜가 담겨 있고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 쯤으로 해석해도 ‘틀렸다’ 말하진 않으리라. 하지만 문화재보호법에선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다음 각 호의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각호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가 그것이다. 그 개념을 일일이 나열하기엔 지면이 부족할 일이나 문화재를 좀 더 이해하는 뜻에서 조금 더 쫓아보자. 유형문화재란 건조물, 고문서, 회화, 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 무형문화재란 연극, 음악, 무용, 놀이, 의식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기념물이란 사적지(史蹟地)와 특별히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 경관이 뛰어난 것, 동물과 식물, 지형, 지질 등 생물학적으로 또는 특별한 자연현상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민속문화재에는 의식주, 생업, 신앙 등에 관한 풍속이나 관습과 이에 사용되는 의복, 기구, 가옥 등으로서 국민생활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포함된다.

문화재를 지정권자에 따라 분류하면 문화재청장이 지정하는 국가지정문화재와 광역단체장이 지정하는 도지정문화재로 나눌 수 있다. 국보,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문화재, 등록문화재가 국가지정이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 문화재자료는 도지정이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만약 야외 활동 중 천연기념물에 해당하는 수리부엉이나 사향노루 같은 동물이 다치거나 죽어 있으면 어떻게 조치해야 할까? 해당 지자체의 문화재담당부서에 신고하는 것이 정답이다. 김상일 학예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물은 그 자체로 문화재이기에 섣불리 처리했다간 실정법(=문화재보호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사천시에는 얼마나 많은 지정문화재가 있을까?

사실 다른 지자체에 비하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경남도 전체 문화재가 1718개인 데 비해 사천에는 딸랑 50개가 있으니 3%에 불과하다. 그 중 국가지정문화재도 6건(=보물 1건, 천연기념물 2건, 사적지 1건, 무형문화재 2건)에 그치니 대단히 가치 있는 문화재라고 말하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선 보기 드문, 독특한 문화재란 점이 특징이다.

▲ 사천 지정문화재 현황.
사천의 문화재 중 으뜸은 보물 제614호인 ‘사천 흥사리 매향비’다. 매향의식은 불교의 미륵신앙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하층민들이 어려운 현실을 불법(佛法)을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의 발로로 알려져 있다. 사천의 매향비는 고려 우왕 13년(1387년)에 조성됐다. 비문에 따르면 승려 중심의 불교신자 4100명이 향계를 맺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의 살기가 평안함을 미륵보살께 비옵니다”라고 빌었다. 이렇게 매향의식 전체를 소상히 밝힌 것은 이 매향비가 유일해 매향의식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았다. 향촌동 매향암각과 용현면 선진리비석에도 매향에 관한 흔적이 있다.

그밖에 곤양면 성내리에 있는 비자나무(제287호)와 신수동 아두섬 공룡화석산지(제474호)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 진주삼천포농악(제11호)과 가산오광대(제73호)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2000~2300년 전에 국제 무역항으로 이름 날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늑도 유적지는 사적지(제450호)다. 이상이 국가지정문화재들이다.

이 가운데 늑도 유적지는 출토유물이 1만3000여 점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또한 특이한 유물이 많았다는 점에서 학계를 놀라게 했다.(관련기사 : 2015년 5월 7일자 12면, 국제무역항 늑도 참조) 진주삼천포농악은 지난해 유네스코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국가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도지정문화재도 여럿이다. 다솔사 보안암 석굴(유형문화재 제39호)은 경주 석굴암과 그 형식면에서 아주 흡사한 특징이 있고, 용현면 선진리성(문화재자료 제274호)은 임진왜란 때 왜성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일본식 성의 특징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선진리성에는 왜성뿐 아니라 통일신라와 고려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토성의 흔적도 있으며, 앞바다는 거북선이 첫 출전해 승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 지척에 있는 조명군총(기념물 제80호)은 최소 8000명이 함께 묻혀 있는, 국내 최대 집단 매장 유적이다.


이처럼 비록 그 숫자는 적을지 모르나 우리네 선조들이 물려준 사천의 역사와 문화는 그 가치에 있어 결코 작지 않고 가볍지 않다. ‘기왕이면 국보급 문화재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볼 수 있으나 이는 욕심이다. 어쩌면 몇 안 되는 문화재라도 제대로 알고 잘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할 테다.

민속문화재 제3호인 축동 가산리 석장승을 두 번이나 도둑맞았다는 얘기는 부끄러운 우리 현실이다. 석장승 8기 중 4기를 한 차례 도둑맞았고, 이후 세워 둔 모조품까지 누군가가 진품으로 여겨 다시 훔쳐갔다는 웃지 못 할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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