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정치인들이 나서서 한 마디씩 한다. 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 보일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사태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 여당 국회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들이 공포를 많이 느껴 나라경제가 굉장히 힘든 것 같다. ‘메르스’란 무서운 말을 우리말로 바꾸면 안 되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과거 사례와 조목조목 비교하였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263명이 사망했지만 그때도 이렇게 난리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실제로 사망자가 신종플루나 독감보다 적다.”

대권을 노린다고 알려진 한 정치인은 대학에서 특강을 하면서, “이 메르스, 중동 낙타 독감인데 이것 때문에 그냥 난리예요. 여기 특히 마산 이쪽에는 사실 죽은 사람이 없잖아요. 근데 난리예요. 그런데 원자폭탄은 아무도 겁을 안 내요. 대한민국 사람, 웃기는 사람들이에요.”

낯선 전염병에 겁먹고 지도자들이 보기에 ‘난리법석을 떨며 그저 웃기는’ 겁 많은 이 땅의 민초로서 굼뜬 손가락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2009년 신종플루 때는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76만여 명이 감염되었고 사망자는 263명이었으니 치사율은 0.04%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것도 발생한 첫 달인 5월에 확진자는 41명에 불과했고 한 달 동안 사망자도 없었다. 확실히 신종플루는 두려운 전염병은 아니다.

메르스’ 발생 한 달이 살짝 지난 22일 현재 확진자 172명에 사망자가 27명이다. 메르스를 중동 독감, 낙타 독감이니 회화 화하고 사망자 수가 적다며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하긴 우리나라 겨울철 독감 사망자가 매월 1000명 정도이니까 그에 비하면 소소하다.

그런데 왜 이런 야단일까? 독감이 유행한다고 병원을 폐쇄하고 단지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 격리하였던가? 신종플루가 발병했을 때 미국에서도 경로를 낱낱이 알리지 않았다. 치사율이 0.07%로 낮았기 때문이다. 치사율이 0.1%인 독감 때도 물론 마찬가지다. 독감이 유행하면 전 국민의 10-20% 정도가 걸린다. 만약 메르스가 독감마냥 유행한다면? 우리나라 메르스의 현재 치사율은 15%를 훌쩍 넘었다. 국민들이 메르스를 독감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치사율 0.1%의 독감과 15%의 메르스를 같이 여기라고? 호들갑을 떨 이유가 충분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작성한 '위기와 긴급위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매뉴얼에 ‘혹시 그 공포가 그릇된 것이라 할지라도 멍청하다고 하지 마라. 사람이니까 겁을 먹는 거다.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전문가도 아니면서 겁은 없다.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문득 이 나라에서 국민 노릇하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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