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로네 作 로마의 흑사병(La Peste à Rome)

쥘 엘리 들로네(Jules-Élie Delaunay)는 앵그르로부터 시작한 프랑스 아카데미 화풍의 정점에 위치하는 화가다. 그의 그림은 고전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신고전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그림의 내부에 흐르는 시대적 분위기는 그를 고전주의 작가로 묶어두기에는 뭔가 다른 것이 감지되기도 한다.

화면의 중앙에 배치된 죽음의 정령은 날개 단 천사의 지시에 따라 죽음과 파괴의 창을 문에 꽂으려 하고 있다.(이것은 신성 로마 제국 당시 흑사병을 신의 저주로 보았던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거리는 주검이 널브러져있고 동시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있다. 신성 로마 제국 시대 도처에서 창궐했던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흑사병은 원래 야생의 다람쥐나 들쥐 등에게 있는 전염병이었지만, 쥐의 벼룩을 통해 병원균이 사람에게 전염되고 전염된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서 튀어나오는 균이나 분비물로 인해 매우 빠른 전염 속도를 보이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이 그림을 그린 들로네는 주로 벽화를 그렸는데, 이 그림은 벽화가 아닌 캔버스화로 크기는 131CmⅩ176.5Cm로서 일반적인 크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 그림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비평가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는 그 크기가 작은 것을 몹시 아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진지한 분위기가 그림을 지배하고 있어 크기만 조금 더 크다면 아름답고 좋은 역사화가 될 것이다. 크게 확대되어 넓은 전시실에 걸린다면 로마의 흑사병(La Peste à Rome)은 살롱전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호평 받을 것이다.”

이 그림의 분위기는 암울하고 어둡다. 하늘은 암회색으로 덮여있고 화면 왼쪽 상단의 계단으로부터 그 밑으로는 이미 절명한 시체들로 가득하다. 그런가 하면 화면 오른쪽 아래쪽 모퉁이에는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신음이 들리는 듯 목이 뒤로 젖혀져 있거나 웅크린 사람들이 있다. 거리를 감싸는 공기는 불쾌한 어둠으로 내려 앉아 있으며, 이미 죽은 사람들의 부패와 죽음의 냄새가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다만 천사의 날개가 희고 밝게 보이는데 이것은 들로네가 화면에 배치해 놓은 알 수 없는 희망의 빛으로 해석할 수 있다.

1856년 로마상 그랑프리의 부상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된다. 들로네는 여기서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완벽주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벽화 작업에 몰두하는데 파리 오페라 하우스와 그의 고향 낭트의 성 니콜라스 교회의 벽화에 그의 걸작들을 남기게 된다. 만년에 시작한 쟈크 제르맹 수플로(Jacques-Germain Soufflot)가 설계한 파리 팡테옹(처음에는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곧 세속적으로 사용된 건물로서 이탈리아의 판테온을 모티브로 삼아 설계된 건축물)의 벽화 ‘성 쥐네브의 삶(Life of St Genevieve)’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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