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반의 가난한 어부(Le pauvre pêcheur 1881)

▲ 샤반의 가난한 어부(Le pauvre pêcheur 1881)
표현주의(야수파)의 대가 앙리 마티스(Heinri Émile-Benoit Matisse)가 높이 평가한 덕에 매우 유명해진 피비 드 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 1824 ~ 1898)은 캔버스에 그리는 화가보다는 벽화작가로 더 유명하다. 물론 그가 그린 캔버스 작품들은 뒤이어 만개한 후기 인상파들이 작품의 모티브로 삼을 만큼 뛰어난 그림이 많다. 이 그림도 바로 그 중 하나이다.

가난한 어부(Le pauvre pêcheur)로 알려진 이 그림이 1881년에 처음 살롱을 통하여 공개했을 때, 이 작품은 심한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이고 비현실적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동시에 형식적으로도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 회화적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어부가 배 위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어부의 행색으로 보아 최근에 고기를 잡아 돈을 만든 적이 없는 듯, 초췌하고 남루해 보인다. 그의 아내와 아이는 꽃이 핀 풀밭에 있는데 아내는 꽃을 꺾어 한 다발을 쥐고 있고 아이는 그 꽃 밭에 누워있다. 이 무표정해 보이는 가족들이 오히려 어부의 표정과 함께 더 쓸쓸해 보인다. (혹자는 두 아들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러기에는 나이차가 너무 많아 보인다.) 이 그림은 이전의 화가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무채색을 주조로 했는데 이는 그가 벽화를 주로 그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에르 퓌뷔 드 샤반은 프랑스의 리옹 출신으로 광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공과계통의 삶을 살려 했으나 병 요양 때문에 들린 이탈리아 여행이 화가의 삶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주 짧게 외젠 드라크르와(Eugène Delacroix)화실에서 배우기도 하고 역사화가였던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에게도 사사하였다. 하지만 샤반의 그림은 이들 화가의 영향보다는 매우 독자적이며 창의적인 세계로 나아갔는데 이 그림은 샤반의 독자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화면의 위쪽에 수평선을 그림으로써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마치 전지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화면 앞에 우뚝 선 어부의 실루엣과 원근법과는 약간 무관해 보이는 풍경을 굽어볼 수 있게 함으로써 그림의 주인공인 어부의 피곤하고 힘든 삶과 거기에 부가되어 있는 어부 가족들의 삶이 우리에게 곧바로 통찰되게 한다. 이것은 이 그림을 그린 샤반의 의도된 장치로써 그림의 무채색과 수면에 반사된 쓸쓸한 배 그림자, 화려하지 않는 들꽃과 함께 우리의 가슴 깊숙한 곳에 알 수 없는 회한을 가져다 준다.

이러한 그림의 느낌은 샤반 이후의 후기 인상파, 특히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폴 고갱(Paul Gauguin),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데, 그들은 이 엄숙한 장면이 가슴 속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피카소도 이 작품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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