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Léon Gérôme의 “그리스 청년의 닭싸움
(JeunesGrecsfaisantbattre des coqs 1846)

▲ JeunesGrecsfaisantbattre des coqs 1846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예술적 프리즘은 아카데미즘을 거부하는 사실주의 회화로부터 매우 아카데미적인 역사화까지 광범위한 폭을 가진다. 쿠르베(Gustave Courbet')가 사실주의의 대표자라는데 의의가 없듯이 쟝레옹제롬(Jean-Léon Gérôme)은 아카데미즘의 대표자이자 역사화파의 계승자로 인정받은 쿠르베의 반대편에 위치한 화가였다.

제롬은 16세 되던 해(1840년) 역사화가인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의 파리 작업실에 견습생으로 들어가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843년에 들라로슈의 작업실이 문을 닫게 되자, 제롬은 스승과 함께 이탈리아로 간다. 거기서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확함, 그리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익히게 된다. 그리고 그 영향을 평생 이어가게 된다.

이 그림 ‘닭싸움(Jeunes Grecsfaisantbattre des coqs 1846)’은 그가 스승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온 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열망을 이루기 위해 여러 번 로마상(당시 화가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였으며 그 부상으로 이탈리아 유학이 보장되었다.)에 도전한 끝에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한 그림이다.

제목에 표시 된 것처럼 그림의 주인공은 젊은 그리스 남녀이다. 인물을 누드로 그린 것은 아카데미즘이 추구하는 원칙에 가깝다. 즉 아카데미즘이란 르네상스적 규범에 충실한 고전주의적 경향을 말하는데 인물의 표현은 제작적 비례를 따라 그리는 것이다. 사람의 피부를 완벽하게 재현한 붓 터치와 옷의 질감을 표현하는 방법은 이전 로코코의 전통도 얼핏 느껴지는데이것 역시 아카데미적인 경향의 핵심이라고 볼수있다. 뿐만 아니라 닭의 깃털 하나 하나를 매우 정교하게 표현하여 제롬 이후 등장하는 “드로잉이 보이는 것은 회화라고 볼 수 없다”라는 앵그르의 정신과도 부합된다.

제롬 회화의 주제는 역사적 시공간을 주요한 무대로 하고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로마시대 검투사의 이야기를 표현한 ‘검투사들(Pollice verso)’이나 ‘시저의 죽음(Mort de César)’등은 마치 그 당시 사건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제롬은 역사적 시공간을 당시 상황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근위병들의 결투(Suites d'un balmasque)’는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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