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 이정 선생의 과거 급제문>

▲ 구계서원 전경.
중국 고사에 능통…어진 임금의 도리를 아뢰다

어려서부터 글에 통달했던 구암 이정 선생이 과거 시험에서 모두를 놀라게 했던 급제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이정 선생이 25세 되던 해, 별시 문과에 응시해 막힘없이 써 내려갔던 문장들을 소개한다. 때는 중종 31년, 1536년 2월 28일이었고 이날의 시제는 축망(祝網)이었다. 축망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탕왕이라는 어진 임금에 대한 이야기로 ‘축’이라는 어부가 그물을 치고 있는 것을 지나가던 왕이 보고 그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과거는 임금이 현장에서 내는 시제만을 보고 곧 바로 글을 적어야 했음에 비추어보면 이정 선생은 이미 중국 고사를 훤히 꿰뚫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룩하도다, 하늘이 살피시고 비쳐주심이여, 묘하도다. 조화를 고르게 베푸심이여, 지극히 밝은 성인이 천지의 원체를 본뜨시어 세상 만물 모두를 하나로 보고 어짐을 함께 베푸시기를 왕성이 하였도다.
(猗上天之覆燾 妙是化之惟均 肆聖人之體元 譪一視以同仁)
의상천지복도 묘시화지유균 사성인지체원 애일시이동인

탕왕께서 그물치는 법으로 축을 가르치시고 있음을 우러러보니, 지극히 덕이 넓고 넓었음을 감축 드리며, 백성을 사랑하는 많은 정서를 크게 확대 하였기에 마침내 미물들에게도 두루 미쳐가기 지극히 하였도다.
(仰湯網之有祝 感知德之溥博 擴愛民之餘緖 竟微物之偏及)
앙탕망지유축 감지덕지부박 확애민지여서 경미물지편급

때때로 폭군은 ‘이날이 언제 망할꼬’ 하는 사방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차마 죽이지 못하는 어진 덕을 감싸 안기도 한다. 夏나라 누대의 함정을 벗어나게 하시고, 아름답게 하늘의 명령으로 유신의 명을 보전하시었다.
(時曷喪之方歎 抱不殺之仁德 脫夏臺之拘攣 保休命之維新)
시갈상지방탄 포부살지인덕 탈하대지구련 보휴명지유신

작은 도읍인 毫都로 가는 길을 내어 함께 나아가자 말하고, 탁치의 고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축의 요설을 흔들어 깨우치시고, 사면에 높이 벌려 놓았던 그물을 걷게 하시고, 높이 벌려 놓은 사면의 그물을 세 곳은 열어서 날아가고 달아나게 하였으며, 한 곳의 그물만 다 잡으라고 가르치셨다. 음탕한 욕심이 이 처럼 많이 가짐을 탐내고 즐김을 슬피 탄식하였으니, 성스럽고 자비스런 신명의 은총에 격렬히 감격 합니다.
(路毫都而言邁 遇椓置之有人掉發祝之饒舌 罟四面之高張)
로호도이언매 우탁치지유인 도발축지요설 고사면지고장
(籠雨間之飛走 慾打盡於一網 嗟淫慾之是耽 激聖慈之神衷)
농우간지비주 욕타진어일망 차음욕지시탐 격성자지신충

슬피 탄식 하도다. 만물이 처음 태어남이여! 꿈틀거리는 모든 생명들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기운 변화가 탁하고 얼룩진 것을 뭉치게 하였으며, 막히고 치우쳐서 다름이 있음을 마음대로 놓아 주었도다.
(噫庶物之初賦 紛蠢蠕之 鐘氣化之駁濁 縱徧塞之有異)
희서물지초부 분준연지총총 종기화지박탁 종편새지유이

그러나 나도 같은 만물이 되었으니 또한 천지 가운데서 생명을 조섭해 가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남과 내 사이가 간격이 없는 것이고, 타고난 기질이 저쪽과 이쪽 사이에 다름이 있게 되고, 마땅히 성품을 다하여 물질에 미치게 하고 여러 부류의 생명도 알을 품어 기르고 있으니 어찌 탐욕이 이 같이 극에 달하여 굳센 뜻을 근거로 하여 밖으로 피어나게 할 수 있을까?
(然吾與之爲物 亦攝生於天地 固物我之無間 稟氣殊於彼此)
연오여지위물 역섭생어천지 고물아지무간 품기수어피차
(宜盡性而及物 囿群類於卵育 胡貪慾之是肆 恣逞意而外發)
의진성이급물 유군류어란육 호탐욕지시사 자령의이외발

하물며 우리들 사람을 그 가운데 세워 만물의 우두머리로 삼아 주인이 되게 하였으니, 하늘이 가장 두터운 은혜를 짐 지워서 천지만물을 넓게 화생하여 양육함을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矧吾人之中立 首萬物而爲主 荷天畀之最厚 任化育於率普)
신오인지중립 수만물이위주 하천비지최후 임화육어솔보

방자하게 포악에 맴돌아 만물의 본성을 다 버리게 하면 이것이 스스로 그 주인 된 도리를 잃게 하는 것이다.
응당 물질을 취하는 것도 절도가 있음에 응하여, 천심의 넓고 큰 조화에 보답해야 하는 것이다.
(徜肆暴而盡物 寔自失其主道 應取物之有節 答天心之洪造)
상사폭이진물 식자실기주도 응취물지유절 답천심지홍조

이것을 측은히 생각하여 설명을 밝힌 것이니, 곧 그물을 세 가지 방면을 열어주고 한 곳만 걸어 두게 하는 한 이치인 것이다. 그것은 혹 왼편도 되고 혹 오른편도 되게 하여, 스스로 걸려든 소리를 듣고 이것을 잡아드리게 한 것이라.
(慈惻念而闡說 爰開三而掛一 伊惑左而惑右 聽自罹而是獲)
자측념이천설 원개삼이괘일 이혹좌이혹우 청자리이시획

한쪽 끝을 자세히 미루어 헤아려 그 생명이 살아 나감을 얻게 하는 것이니 혈기 있는 것을 모두 다 함께 이루어져 나감을 아름답게 한 것이다.
(推一端之子諒 活三隅之禽獸 物自得其生生 嘉血氣之咸逐)
추일단지자양 활삼우지금수 물자득기생생 가혈기지함축

진실로 한 물건도 제가 있을 곳을 잃으면, 그 근심과 해가 내 몸에 있는 것 같이 한 일이니, 이것이 어찌 간계한 것을 행하여 겉으로 명예를 얻기 위한 가짜라 할 수 있으리오? 가득한 울창주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을 헤아리고, 이 마음이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 거룩하고, 지극히 어진 힘이 손아귀에 가득참 같이 하도다.
(一物之失所 若患害之在躬 是豈干譽而外 諒弸鬯之由中)
구일물지실소 약환해지재궁 시개간예이외 양붕창지유중
(偉此心之不忍 實至仁之拳如)
위차심지불인 실지인지권여

은덕이 이미 날개와 털 가진 짐승에게까지 미쳤으니, 은혜를 어찌 검은 머리 서민들에게 베풀기를 아꼈으리오. 우주의 은혜를 의젓이 받아 보호함을 품었음이여 성왕의 은택에 젖어 헤엄치기를 다하였음이로다.
(德旣及於羽毛 恩豈嗇於黔黎 儼宇惠而懷保 盡涵泳於聖澤)
덕기급어우모 은개색어검여 엄우혜이회보 진함영어성택

인물들이 은혜를 모두입어 많이 나오도록 하였으니, 화평한 기운이 흡족하게 되었음을 이루었도다. 큰 두려움이 있어도 작은 것을 품어 주었으며, 혹 먼 곳에서 듣고 찾아 오기도하고 가까운 곳에서는 기뻐하기도 하였다.
(人物之咸避 致和氣之浹洽 有大畏而小懷 或遠來而近悅)
애인물지함피 치화기지협흡 유대외이소회 혹원래이근열

마침내 폭악한 것을 대신하여 제자리에 나아가게 하시니, 크신 우임금의 옛일을 이어 가심이로다. 축의 그물 친 일로 한결 마음을 아름답게 하엿음이여, 나라의 연맥을 육백년 동안 심었음이로다.
(竟代虐而莅位 纘大禹之舊服 懿祝網之一心 樹國脈於六百)
경대학이리위 찬대우지구복 의축망지일심 수국맥어육백

夏,殷,周 삼대의 좋은 풍속이 멀어져 감을 통탄하며 세세로 이어진 임금이 일어나지 않아 어린 자식 같은 백성들이 풀포기 처럼 쓰러짐도 오히려 참을 수 있지만 하물며 큰 은혜를 미루어서 만물에 미쳐가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痛三代之云逖 世仁君之不作 芟赤自兮猶忍 況推思而逮物)
통삼대지운적 세인군지불작 삼적자혜유인 황추사이체물

숲에 불을 질러 언덕 마다 밭을 일구었으니, 이미 임금님 붓 끝에 죄가 나타났습니다. 하물며 염소로서 소와 바꾸어서 희생으로 쓰게 하였으니, 한갓 인정을 바로 잡은 것이고 실지의 일을 한 것은 아니다.
(田焚林於咸丘 己見罪於聖筆 矧以羊而易牛 徒矯情而非實)
전분림어함구 기견죄어성필 신이양이역우 도교정이비실

어진 덕을 베푼다는 것을 듣지 못했음이 오래 되었더니, 오늘에 다시 볼수 있음을 경축하며, 백성들이 성덕을 먹고 자람을 흡족히 여기고 또한 사냥도 때를 맞추어 하게하였으니,
(久仁德之未聞 慶復覩於今日 民含哺於聖德 又蒐狩之以時)
구인덕지미문 경복도어금일 민함포어성덕 우수수지이시

이미 백성을 어여삐 여기고 만물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성탕 임금님의 진실한 다스림을 만난 것 같으나 그러나 이 마음이 항상하지 않고 쓰러질까 걱정되오니, 원하건대 성상께서 조심하는 마음을 더하여 가시기를 부지런히 하소서.
(旣仁民而愛物 邁成湯之允釐 然此心之靡常 願聖上加敬而)
기인민이애물 매성탕지윤리 연차심지미상 원성상가경이

백성을 친히 하시면 백성과 만물이 우러러 바라볼 것이니 어짐도 차례를 두어 어긋나지 않게 하소서, 다행이 앞자리에 비었던 일을 이어 받아 부지런히 이런 일을 미루어 마음속을 털어 주청드렸습니다.
(孜孜親而民兮 民而物冀序仁而不忒 幸承虛於前席 勤推此而啓沃)
자자친이민혜 민이물기서인이불특 행승허어전석 근추차이계옥
출처: 1993년 사천문화원 발행
‘구암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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