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삼천포시 분리 39년 뒤 재통합…통합 20년 흘러
지역화합 의미 담은 시민의 날 행사…현안, 시민에게 묻다

▲ 하늘에서 본 사천시청사 전경. 1995년 통합 사천시 출범으로 읍면과 동지역 중간에 사천시청이 자리잡았다.
사주 승격 1000주년과 통합 사천시 출범 20주년을 기념해 와룡문화제와 사천시민의 날 행사가 8일부터 사흘간 사천시청 노을광장에서 열린다. 지역 통합과 시민 화합의 의미를 담은 행사이니만큼 사천시의 역사를 톺아보고, 올해 시민의 날 행사를 미리 살펴보자.

#사천의 행정구역 변화는?
사천시사에 따르면, 사천은 삼국시대 사물국(史勿國)이라 불리다가, 6세기 법흥왕때 신라에 정복돼 사물현(史勿縣)이 된다. 경덕왕 16년(서기 757년)에 다시 사물현이 사수현(泗水縣)으로 바뀐다. 사천의 동부에 해당하는 곤양지역은 곤미국으로 불리다 진흥왕 23년(562)에 신라에 병합되고, 경덕왕 16년(757)에는 포촌현(浦村縣)에서 하읍현(河邑縣)으로 이름을 고쳤다. 하읍현(河邑縣)은 고려 태조 23년(940)에 곤명현(昆明縣)이라 불리게 된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사천에서 유년기를 보낸 고려 8대 현종은 재위 6년(1015년) 윤 6월께 사수현을 사주(泗州)로 승격시켜 풍패의 땅(왕조의 고향)이라 불렀다. 현종은 어린 시절 와룡산 인근 배방사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 훗날 왕이 되었고, 와룡이 지닌 뜻과 무관하지 않다. 사주는 400년 넘게 이름이 이어져 오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년) 읍호가 다시 사천(泗川)현으로 격하돼 현감이 설치됐다.

곤양지역의 경우 세종 2년(1420년) 곤명현에 남해현을 합쳐 곤남군(昆南郡)이 되기도 했다. 세종 19년(1437)에는 다시 남해현을 분리시키고 하동의 금양을 곤명에 병합시켜 곤양군(昆陽郡)으로 개칭했다. 사천현은 경상도에 있었던 38개 현 중의 하나였고, 곤양군은 역시 경상도에 있었던 23개 군 중의 하나로 각각 발전했다.

역사적 부침 속에서 고종 32년(1895년) 사천현이 사천군이 되었고, 이때 곤양군이 사천군에 편입됐다가 주민 반발로 다시 곤양군으로 환원하는 일도 발생했다.

현재 사천시 권역의 기틀이 확정된 것은 일제시대였다. 1912년 고성군의 남양면, 진주군의 축동면이 사천군에 편입된다. 1914년 곤양군이 다시 사천군으로 통폐합되어 곤양면이라 칭하게 됐다. 1918년 문선면과 수남면을 병합하여 삼천포면이 되었으며, 1931년 10월에는 삼천포면이 삼천포읍으로 승격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사천군 인구 약 9만여 명으로 기록돼 있다.

#1956년 삼천포시 분리
극적인 행정구역의 변화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6년께 이뤄진다. 현재 동지역은 일제시대부터 삼천포항의 발달과 물류 수송, 수산업 활성화 등으로 경기가 활성화되고 있었다. 당시 지역정치인들은 삼천포읍의 시승격을 위해 갖은 노력을 펼쳤다.

1956년 7월 8일 법률 제393호로 삼천포읍과 남양면을 통합하여 삼천포시로 승격, 사천군에 분리됐다. 삼천포시는 1965년에 김천시와 삼천포시의 철도 건설로 계획했던 김삼선의 일환으로 진주시의 개양역과 삼천포시의 삼천포역 사이에 진삼선이 개통됐다. 그 해 당시 유명 가수 은방울 자매가 부른 <삼천포 아가씨> 노래가 히트하면서 전국적으로 지명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1956년 7월 승격 당시 삼천포시는 총 면적 58.85㎢에 법정 동수는 27개 동으로 가구수 8249호, 5만1288으로 기독됐다. 시사에 실린, 1958년 사천군 인구는 1읍 7개면으로 총면적 총면적 346.28㎢, 가구수 1만3953호로 인구는 8만2792명이었다.

#분리 39년 만에 재통합..그리고 20년
도농 복합형태의 새로운 시를 만드는 정부정책이 1994년부터 가시화됐다. 통합시의 명칭과 청사 소재지 선정을 두고 두 지역간 극심한 대립이 빚어졌다. 사천군 주민들은 '사천시'로, 삼천포시 주민들은 기존 명칭을 통합시 명칭으로 정해야 한다고 고집했고 시청사도 각자 자기 지역에 세울 것을 주장했다.

당시 동지역 주민들은 “삼천포가 시로 승격되어 39년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도시로서 발전해왔고, 상권의 중심지”라며 “삼천포시 중심으로 통합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사천군지역에서는 “사천은 진주와 생활권에 가깝고, 삼성항공, 진사공단 등 공단 형성에 따른 유입 인구증가와 도시 팽창으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군세가 오히려 삼천포시보다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맞섰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당시 장면들이 소개됐다. 당시 두차례 주민투표 끝에 가까스로 찬성이 과반수를 넘겨, 통합이 확정됐다. 1995년 시·군의 통합추진기획단을 설치 운영됐다. 1995년 3월 15일 양시군 대표자가 합의문을 작성했다. 당시 합의문은 통합시 명칭은 '사천시'로 하고, 행정타운 위치는 통합시의회가 결정하기로 한 것. 이때 서부 3개면 주민 교통편의를 위해 서포-용현간 사천대교 건설이 합의됐다. 사천삼천포 통합안은 그해 도의회를 통과해, 5월 10일이 통합 사천시 출범일이 됐다. 이때를 기해 매년 시민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사천시사에서는 “1956년 7월, 양 시군으로 분리된 이래 실로 39년 만에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사천 전체가 다시 하나 되어 발전을 하게 되었다”고 당시 통합 의미를 설명했다.
통합 이후 읍면지역은 항공산업의 메카로, 동지역은 해양관광도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 행정력을 기울여야 왔다. 통합 당시 쟁점이 됐던 시청사 위치는 이후 용현면으로 결정됐고, 2007년께 현 위치에 사천시청사가 개청됐다. 통합 20주년이 흘렀지만 선거시즌마다 지역갈등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지역화합은 여전한 과제다.

시민의 날, 시민참여형 행사 다채

   
▲ 지난해 도전 골든벨 행사모습.(사진=사천시 제공)
통합 사천시 출범 20년을 맞은 만큼 시민의 날 행사도 일반 기념식보다 시민 참여에 방점을 찍었다.

통합 20주년을 맞는 시민의 날 기념식은 8일 오후 7시 사천시청 노을광장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이날 이종범 시의회 부의장이 시민헌장을 낭독하고, 이선두 부시장이 사천시의 역사를 간략하게 보고 한다. 송도근 시장이 시민의 날 겸 와룡문화제 개제선언을 하면, 풍등이 날아오른다.

시민의 날 기념식은 사천시여성합창단 시민의 노래 제창으로 막을 내린다. 이보다 앞서 이날 오후 3시에는 통합 사천시 출범 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수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또한 시는 지난해에 이어 도전 골든벨 행사를 연다. 9일 오전 9시50분터 시청 노을마당(사천시민대종각 앞)에서 열릴 사주 1000년 도전골든벨 행사와 관련해 예상문제 100개를 시청 홈페이지 공지사항란에 공개했다. 이날 행사는 초청자와 당일 신청자를 대상으로 O,X퀴즈에 이어, 예선통과자를 대상으로 골든벨 방식으로 진행한다. 패자부활전도 마련돼 있다.

질문은 사수를 사주로 승격시킨 고려 8대 왕의 이름, 하루 두번 바닷길이 열리는 별주부의 전설이 있는 섬의 명칭, 사천시 올해 예산규모, 삼천포대교의 교량 명칭, 사천공군기지에서 제작된 국산 1호 2인승 경비행기 이름, 사천 8경 등 사천시를 알 수 있는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시는 9일 오후 1시부터 1시간동안 사천시민대종 앞 광장에서 <시정참여 ‘도전, 나도 한마디’>행사를 갖는다. 참여 인원은 관람객 100명, 시청 공무원 50명 등 150명이 참여한다.

시는 시청공무원(각 실과소별 1명 선발)과 관람객을 대상으로 지역현안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참가자들에게 일정시간내 각자의 해결책을 제출토록 하여 심사를 한다. 심사를 통해 순위를 정하고, 와룡문화제 폐막 직전에 시상한다.
시험문제는 지역현안 2개를 관람객과 공무원을 구분해 제출하고, 시험 전까지 비공개할 예정이다. 등수와 관계없이 전 참가자에게는 특산품 상품권이 증정된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