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목욕봉사 하는 ‘삼친회’ & 친구 위해 밥값을 모금함에

경남 사천의 삼친회 회원들이 양로원 할아버지들을 목욕탕으로 모시고 있다.
이야기 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인 봉하마을 뒷산에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이 전율하던 지난 토요일(23일) 오전11시, 그가 바라던 ‘가슴 따뜻한 세상’에 어울리는 따뜻한 얘기가 있다고 해서 고성군 하이면에 있는 삼천포화력본부를 찾았다.

기자가 찾은 곳은 사내 목욕탕인 화목정. 직원들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회사에서 200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는 이 목욕탕에는 평소와 달리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들이 몸을 씻고 있었다.

물론 삼천포화력본부 젊은 직원들과 함께였다. 젊은이들은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들이 옷을 벗고 입는 것에서부터 탕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까지 세심하게 도왔다.

그리고 목욕도 함께 했다. 할아버지들은 익숙한 듯 몸을 맡겼고, 젊은이들은 이들의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겼다.

삼친회는 보호시설에 있거나 홀로 사는 노인들을 한 달에 한 번 씩 목욕시켜 주고 있다.
“할아버지, 안 아픕니꺼?”
“오데, 썬~하이 좋다”

등을 미는 젊은이의 물음에 한 할아버지가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이들의 목욕은 젊은이와 할아버지가 한 조를 이루어 진행됐다. 농담과 웃음이 섞인 작은 목욕탕은 영락없는 동네 목욕탕이었다.

이날 목욕을 함께 한 할아버지들은 인근 양로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휴일을 반납한 사람들은 삼천포화력본부 직원들로 구성된 ‘삼친회’ 회원들.

직원친목모임에서 봉사모임으로 바꾼 뒤 모임이 훨씬 잘 된다는 삼친회.

삼친회의 역사는 20여 년을 자랑한다. 예전에는 ‘삼천포화력본부 직원친목회’라는 의미였지만 최근에는 ‘삼천포화력본부 친절봉사회’의 줄임말로 사용하고 있다.

회원 67명의 순수회비로 운영되는 모임으로, 회사가 공식 후원하는 봉사단체와는 구별된다는 게 삼친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정임(39)씨의 설명이다. “친목모임에 그치기보다는 지역사회에 뭔가 도움 되는 일을 하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7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삼천포화력본부 근처에서 마을청소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은 결식 청소년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양로원에 머물거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목욕봉사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단순한 직원 친목모임보다 봉사모임으로 바꾼 뒤 모임이 훨씬 잘 된다는 삼친회. 누군가는 떠났지만, 그가 그토록 바라던 살맛나는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느낌이다.

목욕 행사는 항상 점심을 먹어야 끝이 난다.


이야기 둘

25일 경남 사천시 곤양면 성내리에 있는 한 식당을 찾았다. 점심시간을 넘겨서인지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얼른 식사를 주문하고 가게를 살폈다. 이곳 식당 주인이 좋은 일에 쓴다며 식사비 일부를 모금함에 넣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마루 한 쪽에 자리 잡은 모금함
모금함을 찾기는 쉬웠다. 시골집을 그대로 활용한 식당이라 오래 묵은 듯 보이는 마루가 눈에 띄었는데, 그 마루 한쪽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금함에는 ‘2009년1월1일부터는 여러 분이 드신 공기밥값(1000원)은 진주 경상대학병원 암센터에서 투병중인 백혈병환자 이○○(50세) 씨에게 전액 쓰여 집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모금함에는 대부분 1000원짜리 지폐가 들어 있었고 간간이 10000원짜리 지폐도 보였다.

그리고 모금함 뚜껑에는 누군가에게 송금했음을 알리는 은행용 입금확인증이 붙어 있었다. 혹시나 손님들이 의심할까봐 붙여 놓은 듯 했다. 이 입금확인증은 160만원 남짓한 돈이 4월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전달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 선행의 주인공은 이름 밝히기를 싫어한 식당 주인 최아무개(50) 씨이다. 최씨는 20년 넘게 알고 지내는 친구가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이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모금을 시작했다고 한다.

최 씨의 친구이자 투병중인 이 씨는 몇 년 전 절친한 친구에게 보증을 섰던 것이 잘못돼 살림을 거의 날리고 주유소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으나 지난해 초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성금이 전달되었음을 알리는 입금확인증까지 붙었다.
병원비는 물론 자녀 학비도 부족한 사정을 딱하게 여긴 최 씨는 자신의 형편도 넉넉하지 않지만 친구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만든 것이 모금함. 이 모금함에는 손님의 식사비 가운데 밥값(1공기 1000원)을 제해 넣는다. 단, 매달 셋째 주 월요일에 한해서다.

“아이들 셋에, 제 코도 석자입니다. 맘 같아서는 더 돕고 싶지만 이 정도 밖에 안 되네요.”

공식적으론 매달 하루지만 평일에도 모금함을 채워주는 손님들이 있단다. “있어 보이는 사람보다는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늘 마음을 더 쓰는 것 같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기사화 하겠다고 얘기하자 최 씨가 극구 손을 흔들었다. “부끄럽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설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통함에 젖어 있는데, 선생님 얘기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결국 이름 공개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최 씨가 승낙했다. 더 따스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작은 식당에서 번 돈으로 최씨는 친구의 암투병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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