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도미에 - La Blanchisseuse(세탁부 : 1863)

프랑스 혁명은 정치적으로 위대한 사건이었으나 민중에게는 다만 권력의 중심이 바뀌는 정도의 사건이었을 뿐 그들의 삶은 혁명이전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민중들에게 돌아간 것은 여전히 무거운 세금과 가혹한 노동조건, 그리고 좀 더 조직화된 권력의 감시였고 그러한 분위기는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인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다. 위대한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에 의하면 도미에는 “근대미술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이라고 그를 격찬하였는데 이는 도미에가 근대 미술사에 남긴 영향을 웅변하고 있다. 사실주의를 넘어선 도미에의 인물묘사는 윤곽의 묘사에 있어 굵고 강렬한 표현을 사용하여 보기에 따라서는 마치 미완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인물 묘사는 인상파 회화를 넘어 야수파 회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림의 주인공은 세탁부 여인과 여자 아이다. 여인은 한 손에는 무거운 빨랫감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자신의 딸로 추정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높은 계단을 오르고 있다. 누추한 옷과 구부러진 등에서는 혁명 이후 여전한 민중의 지치고 힘든 일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계단을 오르는 여인과 딸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어둡고 무거워 보인다. 채도가 없는 옷의 표현과 거의 윤곽을 뭉갠 얼굴을 묘사한 도미에의 의도는 절망적 현실감, 그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뒤쪽 배경은 환하다. 아마도 아침 나절 해 떠오르는 무렵 막 일터에 도착한 세탁부 모녀를 묘사한 듯하다. 어머니는 손을 마주 잡은 딸 아이가 계단을 오르는 것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도미에 그림에서 언제나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인간미가 예외 없이 이 장면에서 느껴진다. 아이가 계단을 잘 오르지 못해도 어머니는 전혀 채근하지 않는다. 약간 구부린 그녀의 자세와 느슨하게 잡은 그녀의 손으로 보아 아이가 제 힘으로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도미에가 살았던 시기는 프랑스 최대의 정치적 격변기였다. 7월 혁명과 루이 필리프의 입헌 왕정, 그리고 보불 전쟁의 참패와 이에 대한 격렬한 시민운동이었던 파리 코뮌, 이것을 파기하는 제3공화정이 연속되는 시기였다. 민중을 위한 정치적 변화는 없었고 오직 권력 투쟁뿐이었다. 이 암울했던 시기에 파리의 세탁부였던 어머니의 모습을 정치권력에, 민중을 어린 아이에 빗대어 어머니가 아이에게 하고 있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알레고리의 방법으로 정치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지금 이 나라에서도 이 그림은 매우 유효해 보인다. 국민에게 그림의 어머니가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여유와 인내로 국민을 대하는 이 땅의 권력을 도미에처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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