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대두된 신 고전주의의 충실한 계승자이자 인상주의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는 쟝밥티스트카미유 코로 (Jean-Baptiste-CamilleCorot)는 179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코로는 루앙에서 학업을 마치고 1815년 파리에 있는 한 직물가게에 수습사원으로 일하다가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는 당시 신 고전주의 풍경화가로 이름이 높았던 아실 에트나미샬롱(Achille-Etna Michallon)과 장 빅토로베르탱(Jean-Victor Bertin)으로부터 화가수업을 받았는데, “자연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진실하게 묘사하라”던 미샬롱의 조언은 그의 평생 지침이 되었다.

신 고전주의가 지향하는 것은 독일 출신의 요한 요하임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그리스 예술 모방론, 1756』에서 말한 고대 그리스의 이성적 고귀함과 18세기말과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정치, 사회 철학이었던 계몽주의였다. 코로 역시 그런 관점에서 농촌을 보았고 그 결과 파리 근교의 농촌 풍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려한 궁궐과 많은 사람들, 구획된 거리와 상점들이 즐비한 도시와는 너무나 다른 풍경, 이를테면 겨울을 위한 나무더미, 모이를 주는 아낙과 닭들, 친구와 노는 아이들이 그림 속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코로는 1825년부터 1828년까지 3년간 이탈리아체류와 그 뒤 두 차례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은 코로의 예술적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이후에는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 숲에서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찾았고 그는 그곳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당시 많은 프랑스 화가들이 코로를 뒤따라 퐁텐블로 입구의 작은 마을인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것으로부터 바르비종파(École de Barbizon)가 탄생하게 된다.

코로의 작품은 두 종류의 경향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데 그 처음은 소수의 고객을 위해 실물을 직접 보고 그린 상냥한 풍경화이고, 다른 하나는 살롱전이나 시장 판매를 위해 그린 매우 정교하고 세련된 양식의 공식적인 인물화였다. 이 그림은 처음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렇게 두 부류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그림 판매의 수입에 크게 영향 받지 않을 만큼 부모로부터 담보된 안정된 재정 상황이었다.

이 그림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흐름은 바로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범신론적 자연관인데 루앙에서 교육 받을 당시 코로는 이미 루소의 사상에 심취하였고 그 뒤 그의 예술적 사고의 지표로서 한결같이 유지된 의식이었다. 농촌의 일상 중 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코로의 이 그림은 신 고전주의라는 큰 틀 속에 계몽적 사상과 범신론적 자연관이 융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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